▲ 영업사원에서 구단 프런트로, 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신 분상승’을 이루며 가난한 구단 코리아텐더를 강팀으로 조련해낸 이상윤 감독은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무명코치에서 최고의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코리아텐더의 이상윤 감독(41). 매스컴의 조명이 집중되는 이유를 그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드라마틱한 인생살이’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팀은 4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쓴잔을 마셔야 했지만 시즌 동안 달궈진 인기는 그 이후 지금까지도 ‘쭈욱∼’ 계속되고 있다.
식지 않는 인기 ‘덕’에 늘어난 건 주량과 대리운전 비용이요, 줄어든 건 호주머니 두께와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다. 시즌이 끝나면 자신을 쏙 빼닮은 15개월 된 아들한테 ‘애비’ 노릇 한번 제대로 해주겠다고 별렀지만 아직까지 이 감독은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는 가장이다.
언뜻 봐선 ‘냉정한 승부사’와는 거리가 먼 분위기. 하지만 영업사원 때의 ‘끼’와 ‘근성’을 발휘해서 ‘가난한 구단’을 ‘부자 구단’이 부러워할 정도의 강팀으로 만든 저력만큼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역전’의 주인공 이 감독과 함께 한 소주잔에는 코트에서 드러나지 않은 젊은 감독대행의 애환이 차고 흘러넘쳤다.
“사실 경험 많은 감독한테서 느낄 수 있는 카리스마는 없잖아요. 이 상태에서 카리스마를 내세워도 웃기는 거죠. 대신 선수가 갖고 있는 실력을 1백% 발휘할 수 있게끔 노력했어요. 솔직함을 무기로 삼았죠. 모르는 건 선배 감독들한테 자문을 구하고 선수들과 상의도 하면서 작전을 짜고, 창피하지 않다고 최면을 걸면서 바둥거린 덕분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것 같아요.”
잘 알려진 것처럼 모기업이 재정난에 처하면서 코리아텐더 농구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시즌을 치렀다. 전용 체육관이 없어 수도권 내의 다른 구단 체육관을 빌려 사용했고 선수가 새로 들어와도 유니폼이 지급되지 않아 이 감독이 갖고 있는 운동복을 내준 적도 있었다. ‘비상사태’가 아니면 비행기 대신 버스로 이동하는 건 불문가지였고 연고지인 여수체육관에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아 대형선풍기로 폭염을 이겼던 기억도 바로 엊그제만 같다.
“날 믿고 따라주는 선수들 때문에 버텨낼 수 있었어요.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들이 앞장서서 간식비를 충당하며 동료들을 챙겼고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회식을 해도 군말 없이 맛있게 먹어준 선수들이었어요. 목욕탕에서 먹는 삶은 계란에도 작은 행복을 느낄 정도로 소박하고 잔정이 많았죠. 앞으로 이 팀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들이 보여준 사랑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이 감독은 연봉이 아닌 월봉 감독이었다. 다른 감독들이 코치들과 매니저, 프런트로부터 ‘빵빵한’ 지원을 받을 때 이 감독은 직접 양복 챙기고 작전판 들고다니면서 초보 감독대행의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알다시피 농구계의 주류는 연·고대 출신이잖아요. 성균관대 출신으로 상무에서 의가사 제대 후 삼성전자 영업사원으로 활약했던 것 외엔 내세울 게 없는 입장이었어요. 삼성 스포츠단의 프런트로 일하다 진효준 감독이 이끄는 골드뱅크(현 코리아텐더)의 코치로 옮겨온 게 이력의 전부거든요. 진 감독이 팀을 나가면서 엉겹결에 지휘봉을 잡긴 했지만 배짱 튕기면서 구단에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죠.”
이 감독은 한동안 코트에서 철저한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소속팀 선수 외엔 어떤 선수도 이 감독한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처음엔 얼굴을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며 위안을 삼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팀이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1위를 내달리면서 이 감독이 자주 매스컴에 소개되자 상대팀 선수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성원 선수가 제일 먼저 인사를 하던데요. 그래서 기억에 남아요. 사실 감독이라면 성원이 같은 선수가 탐이 나죠. 성실하고 스피드도 좋고. 모든 건 성적이 말해주는 것 같아요. 성적이 안 좋았다면 아무도 나한테 인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이 감독은 술 한잔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실속파’였다. 소주 한두 잔 마시고 취했다고 ‘뻥’쳐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주량과는 별개의 ‘표정 관리’가 가능했다. ‘취중토크’에 나오기 전 이틀 연속으로 과음을 하는 바람에 술을 많이 못마시겠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역시 ‘실전’에선 이 감독의 승부근성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취해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해요. 아마도 영업할 때의 자세가 몸에 배어서일 거예요. 학교 다닐 때요? 어휴, 그땐 정말 ‘막가파’였죠. 농구보단 캠퍼스 생활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아요. 미팅도 자주 나가고 학과 동기들과 술 마시고 길거리에서 잠을 잔 적도 있고…. 시험시간에 친구들이 커닝하라고 대놓고 보여줘도 쓸 수가 없었어요. 무슨 말인지를 모르니까. 그래도 교수들 찾아가 열심히 인사 다닌 덕분에 B학점도 받곤 했어요.”
농구 감독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이 감독이지만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팀의 운명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팀에서 또 월봉 감독을 요구한다면 더 이상 있을 순 없을 겁니다. 좀 더 나은 조건으로 영입 제의가 온다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지금의 선수들과 계속 한솥밥을 먹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어요.”
급한 성격에 약간 말을 더듬으면서도 승부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신선우 감독, 심판과의 잦은 기싸움으로 관심을 모은 전창진 감독, 그리고 카리스마 이면엔 따뜻함으로 가득찬 마음 약한 남자 김동광 감독 등은 앞으로 이 감독이 모델로 삼고 싶은 ‘사령탑’들이다. 마지막으로 이상윤 감독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정확히 감독대행이죠. 얼떨결에 뜬 감독이요. 여전히 감독이란 단어가 생소하기만 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