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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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힘드시죠?” 강동희는 자신을 알아보는 줄 알고 반갑게 “아, 예. 뭐 그렇죠”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답변을 들은 그 남자가 하는 말. “농구선수 현주엽씨 맞죠? 요즘 상무에서 뛰고 있잖아요.”
그러자 이번엔 주인 아줌마가 큰 소리로 참견을 한다. “무슨 현주엽이야. 가수 ‘소방차’의 정원관이구먼.” 아줌마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남자 한 명이 보다 못해 나섰다. “아니 무슨 소리야. 그런데 요즘 왜 이렇게 (씨름이) 재미가 없대요. 인기 있을 때만 해도 잘나갔는데. 참, 씨름 선수는 술도 잘 마신다면서요?”
그날 강동희와 일행은 웃음을 참느라 ‘기절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이번주 ‘취중토크’의 주인공 강동희가 털어놓은 일화 중 하나다. 술을 사이에 놓고 그와 마주앉은 것은 지난 10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 강동희는 화려한 선수 경력만큼이나 참으로 재미있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쏟아냈다. 올 시즌 우승을 노리고 사력을 다했던 시간들이 무위로 끝나면서 한동안 허전하고 시린 가슴 달래느라 술 꽤나 마셨다는 그는 의리, 정, 인간미를 풀풀 풍기며 이내 좌중을 휘어잡았다.
처음엔 술잔을 돌렸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기자의 술잔을 받고 거푸 ‘원샷’을 하던 강동희가 이런 질문을 한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소주 5병은 마시나봐요?” 못들은 척하고 슬쩍 ‘주량이 어떻게 되냐’고 되물었다.
▲ 17년지기인 허재(왼쪽)와 강동희. | ||
“술에 관한 추억은 무궁무진해요. 난 술을 허재형한테 배웠어요. 중앙대 1학년 때죠. 그전까지만 해도 전혀 술을 못했거든요. 처음엔 토하면서 마셨어요. 도저히 안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지금은요? 아무리 마셔도 필름이 끊기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적이 없었어요. 내가 봐도 말술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무척 술을 잘 해요. 에이, 그래도 허재형과는 게임이 안되는데요.”
강동희는 당시 허재야말로 불가사의한 존재였다고 한다. 시합 전날 폭음을 하고 게임에 나가도 오히려 더 좋은 플레이와 많은 득점을 했기 때문. 그래서 강동희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기아 시절이었죠. 형을 보니까 정말 신기한 거예요. 그래서 ‘나도 한 번 먹고 뛰어보자’는 생각에 형한테 같이 술 마시자고 제안했죠. 경기 전날 숙소 방에다 신문지 깔아놓고 족발과 상추로 안주를 준비한 다음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셨어요. 그런데 다음날 진짜 몸이 가벼운 거예요. ‘아, 이거다. 이런 기분이구나’ 싶은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음날 경기 앞두고 형이랑 또 마셨지요. 하지만 형은 되는데 난 안 되는 거예요. 똑같이 술을 마셨는데도 한 사람은 날고 난 긴 거죠. 아마 뱀이 원인인 것 같아요. 형은 줄곧 뱀탕을 애용하고 있거든요. 나요? 나야 ‘밥심’(밥의 힘)이지.”
강동희는 허재와 중앙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17년간 우정을 쌓아온 사이다. 대학도 허재가 있기 때문에 중앙대를 지원했고 실업팀도 허재 때문에 ‘두말없이’ 기아로 방향을 틀었다. 두 사람은 바늘과 실 같은 존재였다. 한 사람을 떼어놓고는 운동이 되지 않을 만큼 친형제 이상의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다 97년 시즌이 끝나고 허재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팀을 떠나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형한테 ‘배신감’을 느꼈어요. (김)영만이랑 나랑 ‘가지말라’고 울면서 얘기할 정도였거든요. 물론 형의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남아 있기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내가 지탱했던 ‘울타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느낌은 당한 사람 아니고는 이해 못할 거예요. 무척 서운했어요. 오랫동안 나눴던 우정이 자칫하면 금이 갈 수도 있었죠.”
“내가 1, 2차전에 뛰지 못하니까 ‘허재의 카리스마에 강동희가 눌렸다’라고 표현하더라고요. 나나 허재형이나 이번 대회는 무척 중요했어요.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어쩜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었거든요. 양보란 있을 수가 없었죠. 플레이오프 시작 전에 한 번 전화통화를 하고 그 후론 연락을 딱 끊었어요. 3차전부터 실력 발휘에 들어가 4차전에서 승부를 걸었지만 천운이 형한테 가더라고요.”
강동희는 12년을 몸담았던 울산 모비스(전 기아)에서 퇴출당한 뒤 무려 1억원의 연봉이 깎인 채 LG와 계약을 맺었을 때의 상처를 결코 잊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성적이 나쁘거나 부상을 당해서 쫓겨났다면 수긍했을 거예요. 난 모비스에서 폐기처분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더 이상 쓸모 없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에서 맘대로 연봉을 깎았고 헐값에 다른 팀으로 보내 버린 거죠. 배신감이 오기로 작용했어요. 보란 듯이 전성기 때의 실력을 발휘하고 싶었죠. 다행히 LG는 승승장구했고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8강전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더라고요. 그때의 허무함, 허전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거예요.”
강동희한테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다. 8년 전 사랑했던 한 여자와 결혼까지 이르렀으나 3개월 만에 헤어지는 수순을 밟았던 것. 결혼 후 드러난 여자의 과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해하고 보듬고 가려해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과거였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강동희는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나도 가정을 갖고 싶어요. 가정이 생기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여러 명의 여자들을 만났어요. 물론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순수한 열정 하나로만 여자를 만나게 되지 않더라고요. 홀어머니를 잘 모실 수 있는 여자, 내조 잘 할 수 있는 여자, 운동선수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여자 등등 기준이 생기더군요. 그러다보니 중도에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예요.”
여전히 결혼에 대한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즌 끝나면 여기저기서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멘트’들이 줄을 잇지만 올해는 뜸하다며 약간은 서운함을 내비친다.
어느새 소주 세 병을 비웠는데 강동희의 표정은 음료수 한잔 마신 듯한 분위기였다. 음주는 물론 가무에도 능하다고 자랑하는 ‘베테랑’ 앞에서 마감을 핑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더 앉아 있다가는 ‘망가지는 일’만 남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