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리는 올 4월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테일러 메이드의 신형 드라이버 헤드에 납을 붙여 무게 를 늘린 후 게임에 나섰다. | ||
프로골퍼에게 골프채는 세상에서 자신의 신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몸에 맞지 않는 골프채를 ‘강제로’ 써야 한다면 이보다 더 큰 곤욕은 없다. ‘세계 최강 골프 코리아’의 위세가 드세기만 한 최근의 미 LPGA 사례를 통해 프로골퍼들의 ‘행복한 골프채 고민’을 살펴봤다.
올 시즌 초반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제치고 지존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박세리(26·CJ)는 ‘깨진 드라이버’ 하나로 한국에서 테일러메이드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2001년 박세리는 테일러메이드사의 320드라이버(테일러메이드 320Ti)를 사용했다. 4월 롱스드럭스챌린지 대회를 앞두고 이 드라이버를 선택했고, 이후 4승을 일궈냈다.
특히 6월 맥도널드챔피언십 프로암 대회 도중 헤드가 깨졌지만 납 테이프로 임시처방만을 한 채 시즌이 끝나도록 사용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는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다.
테일러메이드 코리아측은 라이벌 캘러웨이에 밀려 고전하다 이를 계기로 한국시장 석권을 이루게 됐다. 2002년에는 국내 골프용품업계 사상 최고인 7백5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그해 7월 박세리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3년간 30억원이라는 초특급 용품 후원계약까지 체결했다.
박세리는 지난해 1월 새 시즌을 시작하면서 깨진 드라이버를 교체했다. 같은 제품이지만 수십 개를 가져다가 쳐봐도 ‘깨진 드라이버’와 손맛이 틀려 고심해오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골프채를 택한 것이다. 박세리는 2002년에도 5승을 거두며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의 간판 홍보모델로 톡톡히 제 몫을 했다.
올 시즌 테일러메이드에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총집결시켜 ‘580시리즈’를 새로 내놓았고 당연히 간판모델인 박세리도 320Ti를 R580 모델로 바꿨다. 그런데 박세리의 드라이버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까지 맘먹고 때리면 300야드가 넘는 박세리의 주특기 드라이버샷의 비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신제품으로 치면 공이 쭉 뻗어 나가다 낙하 지점 부근에서 뚝 떨어지는 이상현상이 일어났다. 평균 240야드 정도에 페이드(Fade·약간 볼이 오른쪽으로 휘는 현상)가 걸리는 ‘중병’이었다.
신제품이 종전에 비해 헤드가 다소 커졌는데 박세리의 힘에 비해 무게가 다소 줄어들어 볼끝이 살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1년에 10억원이 넘는 후원을 받는 처지에 드라이버를 옛것으로 다시 교체할 수는 없었다. 결국 4월 나비스코챔피언십 직전에 ‘헤드에 납을 붙여 무게를 늘리는 임시방편’을 동원하기도 했다.
아마추어들에게는 방향성과 비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렸다는 호평을 받는 제품이 정작 간판모델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하니 테일러메이드측도 골치를 앓고 있다. 그래서 박세리용 신제품 특수제작 등의 노력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 올 1월 혼마와 골프용품계약을 한 김미현. | ||
김미현은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여자프로골프 대항전에서 처음으로 혼마를 사용하고 자신의 약점인 비거리를 대폭 늘릴 수 있다고 판단, 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썩 좋지 않다. 김미현은 올 시즌 5개 대회에 출전, 우승은 커녕 ‘톱10’ 두 차례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28개 대회에 출전, 모두 컷오프를 통과하고 우승 2회에 ‘톱10’ 10회를 기록한 지난해 성적에 크게 뒤진다. 골프전문가들은 김미현이 미 LPGA의 문외한인 혼마와 계약한 도박이 결국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5일(한국시간) 미 LPGA투어 미켈롭라이트오픈(총상금 1백60만달러)대회에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컵을 차지한 박지은(24)도 지난 2월 타이거 우즈와 같은 소속인 ‘나이키 가족’이 된 후 고심에 빠졌다. 9년간 핑 아이언을 써오다 나이키와의 초특급계약(모자를 제외한 모든 골프용품을 사용·3년·계약내용 비공개)을 맺으면서 나이키 클럽으로 전면 교체했던 것.
하지만 손에 나이키 클럽이 맞질 않아 고전을 거듭하다 결국 지난 4월 시즌 4번째 대회인 오피스데포챔피언십을 앞두고는 다시 핑 아이언을 빼들었다. 계약조건에 ‘1년 유예조항’이 있어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골프시장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는 나이키측으로서는 찜찜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박지은은 핑 아이언 재사용 후 성적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이번에도 핑 아이언을 사용한 결과 시즌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됐다. 박지은이 1년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부터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