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에서 돌아온 조진호(왼쪽)와 정민태가 시즌 초 국내 프로야구 적응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 ||
그 ‘적응의 법칙’이 해외에서 활동하다 국내로 유턴한 선수들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외국이 아닌 한국이고 가까이에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올 시즌 ‘해외파’라는 꼬리표를 떼고 국내로 돌아온 선수들이 털어놓은 고민들을 들어본다.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 선수로선 두번째 미국 메이저리거로 생활했던 조진호가 SK를 통해 국내 마운드에 복귀하게 되자 야구팬들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했다. ‘출신성분’을 둘러싼 호기심 어린 시선에 대한 조진호의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5년여 동안 미국식 야구에 젖어 있다가 하루아침에 한국 프로 야구를 수용하기란 버거울 따름이었다.
“물론 처음엔 야구를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운동을 하다보면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기존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면서 내 자신과의 싸움이 날 힘들게 했다.”
조진호는 생활면에서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즉 한국에선 ‘하지 말라’는 주문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무척 조심스럽게 말했다. 살짝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미국에서의 습성대로 하고 싶은 말을 가리지 않고 인터뷰했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면서 “앞으로 연습을 많이 해서 할 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 정식 인터뷰에 응하겠다”며 전화 인터뷰를 마쳤다.
다승왕 선두를 달리고 있는 현대의 ‘돌아온 에이스’ 정민태는 2년간의 일본 생활을 접고 귀국할 때만 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 윤정환(왼쪽), 노정윤 | ||
“‘볼 스피드가 떨어졌다’는 의심 어린 시각에 대해 성적을 통해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처음엔 다소 흔들린 게 사실이었는데 초반에 부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난을 쏟아내는 바람에 정말 당황스러웠다.”
정민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년 계약에도 불구하고 2년 만에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사람 사는 정을 느껴가며 운동하고 선후배들과 농담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로축구 J리그에서 활약하다 역시 국내로 돌아온 성남 일화의 윤정환과 부산의 노정윤도 시즌이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윤정환은 선수들의 대우가 다른 구단과는 비교가 안되는 성남 일화로 새 둥지를 틀게 된 데 대해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속시원히 밝히기 어려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팀 성적은 연일 승승장구인데 개인 성적이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다는 생각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지금까지 90분 풀로 게임을 뛰어 본 적이 없다. 꼭 후반전에 교체돼 나온다. 물론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하다보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겠지만 가끔은 90분을 다 뛰게 해준다면 좀 더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테우스’ 노정윤은 워낙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탓에 국내에서 생활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의외로 차분하게 적응하며 부산의 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굳이 한 가지 고민을 꺼내본다면 외국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밴 개인주의적인 사고들로 인해 가끔씩 후배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는 사실. 노정윤의 지론은 ‘프로는 누가 챙겨주기를 바라기보단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 아직은 팀 선배로서의 역할보다는 동료 선수로서 똑같이 경쟁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프로 생활이 처음이지만 노정윤한테 K리그는 또 다른 도전의 무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