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엘류 감독으로선 3번의 A매치를 통해 드러난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 그 중 지난달 31일의 한·일전은 대표팀의 현재 실력과 앞으로 어떤 부분을 수정·보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 바로미터였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통해 들은 한·일전 뒷얘기와 에피소드를 모아본다.
▲ ‘반지제왕의 포효’ 경기 종료 4분여를 남겨두고 골을 넣은 안정환(오른쪽)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 | ||
경기 전날 베스트11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차두리는 이천수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한국 코치들이 차두리의 단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쿠엘류 감독은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차두리는 선발로 투입된 후 오로지 일자로만 오가는 ‘전찻길 플레이’로 공격의 단조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쿠엘류 감독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쿠엘류 감독은 경기 후 코치들이 차두리를 중용한 데 대한 가벼운 ‘항의’의 의견을 제시하자 “수비는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며 차두리를 감싸다가 “차두리가 수비선수냐?”는 한 코치의 지적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후문.
차두리 때문에 마음 상한 사람은 이천수(22·울산)다. 차두리와 포지션이 겹치는 바람에 교체선수로 내려앉으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 이천수의 이런 ‘운명’은 이미 연습 때부터 예고됐었다. 쿠엘류 감독이 1진과 2진으로 나눠 연습 경기를 진행할 때 차두리에겐 1진용 조끼를 입히고 이천수한테는 2진에서 뛸 것을 지시했기 때문.
4시간 동안 공들여 태극문양 스타일로 머리를 염색하는 등 한·일전에 임하는 남다른 투지를 선보였던 이천수는 후반에 교체 투입된 후 좌우를 오가는 활발한 몸놀림으로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안정환(23·시미즈) 대신 최용수가 선발로 나간 이유는 경기 전까지만 해도 최용수가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쿠엘류 감독은 마지막 연습 때까지 최용수와 안정환을 골고루 기용하며 두 선수의 몸상태를 점검했는데 결국엔 움직임이 가볍고 파이팅이 넘친 최용수를 낙점했다.
최용수는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서 후배들에게 이런 말로 목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다잡았다고 한다. “이번엔 진짜 죽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싸우자!”
쿠엘류 감독이 한·일전에서 수훈갑으로 꼽은 선수는 이을용(28·트라브존스포르), 박충균(30·성남), 김남일(26·엑셀시오르), 이기형(29·성남) 등이다.
박충균의 플레이에 대해선 이영표가 합류할 때 과연 누굴 주전으로 기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정도로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을용과 김남일의 플레이는 뒤에서 기다리는 수비가 아닌, 때론 마크하는 선수를 버리면서까지 상대 공격의 맥을 끊고 ‘쫑’을 내는 플레이로 거의 퍼펙트한 경기를 펼쳤다는 평가다.
쿠엘류 감독이 내심 가장 걱정했던 선수는 유상철(29·울산). K리그에서 경고 누적으로 오랫동안 게임을 뛰지 못해 훈련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유상철이 예전 기량을 얼마나 선보이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대체 선수로 왕정현(27·안양)을 뽑아놓고 교체 시기를 저울질했다는 것.
왕정현은 쿠엘류 감독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상대편의 공격수들이 밀고 들어올 때 적극적이고 과감한 수비로 위협적인 면모를 보이는 까닭에 코칭스태프의 칭찬이 자자하다.
하지만 이날 유상철은 활기 넘치는 플레이로 쿠엘류 감독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었다.
한편 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유상철이나 고참급에 속하는 최용수, 김태영(33·전남) 등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홍명보, 황선홍만큼의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코칭스태프에선 유상철이 리더십이 있고 선수들도 잘 따르는 편이라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고 평가한 반면, 젊은 선수로 대표되는 L선수는 “홍명보 선배를 능가할 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선배가 없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