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2일 막을 내린 2015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 결승3번기 최종국. 신진서(오른쪽)가 김명훈에게 승리를 거두고 15세 9개월 5일 만에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이는 1989년 이창호의 바둑왕전 우승(14세 10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타이틀 획득이다. 사진제공=한국기원
# 신진서(2000년 부산 출생)
신진서는 신이 한국 바둑을 위해 보내줬다는 평을 듣는 기사.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한국바둑의 적통은 박정환에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신진서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최근 급부상 중이다.
2012년 7월. 신설된 영재입단대회를 1위로 통과하며 입단에 성공한 신진서는 2014년 제2기 합천군 초청 미래포석열전 우승, 2014메지온배 한·중 신예바둑대항전 우승으로 ‘대기(大器)’임을 스스로 입증해보였다. 2015년에도 질주는 멈추지 않아서 미래포석열전 2연패, 메지온배 2연패 등 신예대회 우승컵을 빼놓지 않고 쓸어 담았다. 결국 연말에는 렛츠런파크배 결승 3번기에서 김명훈을 2 대 1로 누르고 생애 첫 종합기전 우승을 차지한다.
신진서의 이번 우승(15세 9개월 5일)은 1989년 이창호의 바둑왕전 우승(14세 10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타이틀 획득이며, 특히 2000년대 생의 종합기전 우승은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처음이다.
국가대표팀 코치 최명훈 9단은 신진서를 평해달라고 하자 제일 먼저 ‘승부감각’을 꼽았다. “사람들이 흔히 신진서를 이세돌과로 꼽지만 비슷한 점도 있지만 많이 달라요. 하지만 그중 닮은꼴이라면 승부감각일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신진서의 실력은 정상권과 아직 손색이 있습니다. 하지만 승부처에서 터져 나오는 본능적인 감각은 정말 비슷해요. 조훈현 9단의 전매특허인 ‘흔들기’도 그런 종류인데 신진서가 바로 그런 감각을 갖고 있어요. 승부사라면 꼭 갖춰야할 덕목인데 그런 면에서 신진서도 천부적인 승부사로 봅니다. 또 국가대표 훈련이 5시에 끝나는데 이후 집에서도 인터넷 바둑으로 쉴 새 없이 단련하는 모습도 보여요. ‘저 친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구나’ 하는 시간체크가 가능합니다. 성실하다는 얘기죠. 세계 정상은 시간문제로 봅니다.”
신진서의 현 국내랭킹은 7위. 하지만 세계대회 본선 경험은 아직 없다. 올 한해 신진서는 세계대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그의 활약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신민준(왼쪽), 김명훈
“동훈이요? 동훈이는 최고죠.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클 친구입니다. 손댈 곳이 전혀 없어요. 실력 상으로는 이미 정상권에 근접했다고 봅니다. 최근 랭킹5위권 기사들과의 대국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커 나가는 과정입니다. 신진서와 신민준, 김명훈 등에 비교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동훈이 한발 앞서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최명훈 코치)
이동훈은 또래의 10대들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 2월 끝난 제33기 KBS바둑왕전에서 랭킹1위 박정환을 2-0으로 무너뜨리고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신진서가 이세돌의 길을 걷고 있다면 이동훈은 이창호와 흔히 비교된다. 우선 과묵한 성품이 그렇고, 실리보다 둔중하면서도 두터운 바둑을 선호하는 점이 또한 그렇다.
특히 국내대회 성적보다 국제기전에서의 활약이 눈에 띄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바둑의 눈엣가시 중국 커제와 호각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동훈은 커제와 2015년 1승 1패 포함, 통산 2승 2패를 기록 중이다.
가장 최근 열린 2015 리민배 세계신예바둑최강전 준결승전에서도 180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본인도 커제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 리민배 준결승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동훈은 “커제가 강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둘 만한 상대라고 생각한다”며 커제를 대수로워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커리어 면에서 커제가 압도적이면서도 한 살 어린 이동훈에게 발목을 잡히는 것을 두고 선배 기사들은 기풍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커제는 이세돌 스타일이에요. 부딪치면 강해지고 돌에 생명력이 흘러 탄력이 좋습니다. 동훈이는 반대예요. 예전 이창호 9단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뭔가 상대의 초식을 빨아들여 무력화시키는 느낌을 줍니다. 베어도 다시 스물스물 일어나는 안개와 같다고나 할까. 커제의 재기 넘치는 수법이 이동훈을 만나면 잘 통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만일 커제 돌풍이 막을 내린다면 그 종지부는 이동훈 같은 스타일이 찍을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동훈에 대한 평가는 전 국가대표 코치 김성룡 9단의 말로 대신한다. “유 기자님. 동훈이는 참 보면 볼수록 애가 됐어요. 좀 전에 국가대표 하루 일과가 끝나서 모두 돌아갔는데 연구실에 올라가니 동훈이 혼자 남아 청소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기사들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게 쉽지 않은 법인데…. 아마 쟤는 뭐가 되도 될 거에요. 두고 보세요.”
# 신민준(1999년 서울 출생) 김명훈(1997년 서울 출생)
신진서와 이동훈의 성장이 워낙 두드러져 보여서 그렇지 신민준과 김명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10대들이다. 신민준은 신진서와 같이 15세 이하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에 입문했다. 그동안은 신진서에 가린 감이 있지만 나름 착실하게 성장 중이다.
신민준의 장점은 상대가 누구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국내대회보다 세계대회 성적이 더 좋다. 커제에게 ‘판맛’을 본 몇 안 되는 국내기사 중 하나다.
2014년 1월 입단한 김명훈은 곧장 2014년 한국바둑리그에서 김영삼 정관장 감독에게 픽업돼 5지명으로 데뷔했다. 김 감독은 입단 3개월 차 김명훈의 무엇을 보고 선발했을까. “선수 드래프트를 앞두고 왕십리 골든벨 바둑도장에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은 연구생이 더 무섭잖아요.”
김 감독의 예상은 적중해서 그해 정관장은 풋내기 김명훈 초단의 맹활약을 앞세워 챔피언결정전까지 직행했다. 비록 입단 이후 첫 결승 무대인 렛츠런파크배에서 신진서에게 1-2 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이제 김명훈을 모르는 바둑팬은 없다.
하지만 이들은 신진서와 이동훈에 비해 냉정한 평가도 따른다. “이동훈과 신진서가 빠르게 알 껍질을 깨고 나온데 비해 두 사람은 아직 넘어야 할 벽을 남겨두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건 이들보다 앞서간 나현과 변상일도 마찬가지거든요. 빨리 새로운 단계에 이르는 계기가 필요합니다.”(최명훈 코치)
2016년 새해, 과연 세계무대에서 먼저 이름을 떨칠 10대는 누구일까. 그들의 승부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