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팀의 최주영 물리치료사 | ||
트레이닝센터 안에 들어서자마자 수위 아저씨를 향해 멋들어지게 경례를 하고 급하게 찾은 곳이 대표팀의 최주영 물리치료사가 ‘짱’으로 있는 지하 1층 의무실이었다.
선수들의 부상이나 몸 상태의 공개를 극도로 꺼려했던 대한축구협회의 결단과 배려로 진행된 ‘의무실 현장 체험’은 스탠드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던 기자의 시각을 백팔십도로 변화시킨 중요한 기회였고 경험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오전 9시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특히 지난 20일은 올림픽대표팀이 한·일전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이라 더 더욱 의무실이 분주했다. 3명의 물리치료진들이 ‘왕고참’ 최주영 닥터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각종 약품이 담긴 상자가 비좁은 의무실 안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는’ 가운데 바쁘게 떠날 준비를 했는데 기자의 ‘짧은’ 생각으론 가져가 봐야 뿌리는 파스와 붕대가 전부일 것 같았지만 은근히 챙겨야 할 소품들이 많았다. 감기약 등 먹는 약은 물론, 소염제, 진통제, 스타키넷 커버, 스펀지, 폼 러버 등을 가방에 싸니 어느새 굵은 땀이 볼을 타고 흘러 입술을 짭짤하게 적신다.
11시 오전 훈련을 앞두고 선수들이 하나 둘씩 물리치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속초 뜨내기’ 이준영(안양)이 대표팀 유니폼을 엉성하게 걸친 ‘완전 초보’를 보고 웃더니 “볼펜 놓으셨어요?”라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기죽기 싫은 기자는 탤런트 주현씨 버전으로 “누워. 자식아”라고 외치며 장내 분위기를 정리했다.
▲ ‘일일물리치료사’로 나선 유재영 기자(오른쪽)가 최주영 팀닥터의 설명을 들으며 마사지를 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 ||
최주영 닥터가 ‘왕초보’한테 침대에 누운 김두현(수원)의 허벅지를 만져보라고 한다.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자 일반인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팽팽한 전율이 손끝에 밀려온다. “으미∼ 쫄깃쫄깃해”라며 웃는데 주위가 ‘싸’해진다.
“힘줄이 팽팽하게 오므라들었네. 이건 근육이 뭉친 거야”라는 ‘왕고참’의 설명에 저절로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최주영 닥터가 가르쳐준 대로 딱딱해진 부위를 찾아내 엄지손가락을 댄 후 근육이 달리는 반대방향으로 문질렀다. 김두현 입에서는 고통 섞인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최주영 닥터의 표현을 빌리면 이 정도는 약과란다. 눈물까지 흘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슬며시 수건을 가져가 입에 넣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쪽 침대에선 강훈 마사지사가 능숙한 손놀림을 과시하고 있다. 최주영 닥터가 부상 선수들을 돌본다면 강 마사지사는 단순 피로가 쌓인 선수들을 담당한다. 차례를 기다리던 김진규(전남)가 이내 ‘초짜’의 우악스런 손놀림에 몸을 맡겼다. 강훈 마사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블루스 음악을 흥얼거리고, 난생 처음 남자에게 몸을 맡길 위기(?)에 처한 김진규는 ‘흐흐’거리며 웃음보를 터트렸다.
물리치료실 내에서도 마사지 침대는 흔히 ‘사랑의 공간’이라 불린다. 최주영 닥터와 국가대표 수비수 김태영(전남)의 고향 친구인 강훈 마사지사의 걸쭉한 입담과 스스럼없는 성격 탓에 선수들도 절로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선수들은 침대에 누워 마사지도 받고, 고민도 상담하고, 스트레스까지 풀 수 있다며 연방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밖(?)에서 마사지 받지 왜 왔냐”며 ‘19세 이하 청취 불가’ 질문을 연달아 내던지는 강 마사지사와 “여기 오면 돈도 안들고 훨씬 시원(?)해요”라고 받아치는 선수들 간의 입담은 ‘만담의 최고봉’ 장소팔-고춘자 듀오가 울고 갈 정도다.
훈련시간이 가까워지자 ‘줄줄이사탕’처럼 선수들이 몰려온다. 최태욱, 정조국(이상 안양), 조재진(상무) 등이 한 손에 가위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반창고나 붕대를 자르는 솜씨가 영락없는 ‘가위손’ 수준.
▲ 맨 위쪽부터 붕대 등으로 선수들을 치료하는 최 주영 닥터, 김진규 선수를 치료하는 강훈 마사 지사(가운데)와 유재영 기자, 히딩크 감독과 ‘재회’한 최 닥터. | ||
몇 차례 다리를 들어올려보던 정조국이 “완벽해”라며 초보를 덥석 껴안는다. “자식. 평소 무릎이 약한 너를 위해 준비했어”라고 기자도 ‘준비된’ 멘트로 응수했다.
이번엔 K-리그 경기에서 손목이 꺾이는 부상을 당한 조성환(수원)을 붙들고 조심스레 압박붕대를 감았다. 부상 때문에 그토록 좋아하던 컴퓨터 게임을 즐기지 못한다며 울상을 짓는데 마음이 아프다.
10시45분께 선수들이 훈련장으로 모두 이동하자 의무실 안은 갑자기 적막감에 휩싸인다. 대표팀 경력만 어느새 10년째인 최주영 닥터가 기자에게 수고의 표시로 따끈한 카푸치노를 뽑아왔다.
전날까지 여자대표팀과 15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그리고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을 돌보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했단다. 게다가 1주일에 두 번씩 인제대 강의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쉴 시간이 나질 않는다는 그는 정몽준 회장 및 임원진의 마사지 부탁도 들어주지 못해 마음에 걸린다며 이런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인 부상을 예방하고 관리해줘야 하기 때문에 물리치료사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하지만 힘든 내색을 보여서는 안된다. 선수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항상 형, 삼촌처럼 사랑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내 몸이 힘들지만 나로 인해 선수들이 웃음을 되찾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
저 멀리서 피스컵대회 참가를 위해 에인트호벤 선수단을 이끌고 훈련중인 히딩크 감독이 최주영 닥터를 보더니 어깨가 아픈 시늉을 하면서 “인디언!”이라고 외친다. 주저 없이 달려가려는 ‘왕고참’을 잡고 잠시 초보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본다. ‘당신은 선수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긴 자취생활로 가족의 사랑이 그리웠던 초보 물리치료사는 최주영 닥터의 어깨를 통해 ‘어머니’의 체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파주=유재영 월간축구 베스트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