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TK 공천 양도설이 떠돌고 있다. 사진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끝내고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의 안내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최근 정가에 풍미하고 있는 이야기 중 가장 크게 돌고 있는 것이 ‘친박계 어르신들’의 불출마설이다. 친박계 핵심들이 이들 올드보이에게 불출마를 종용한 뒤 정치적으로 보답할 것이란 말이 파다하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이한구 전 원내대표를 빼고 네 명의 친박계 중진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원내지도부 쪽 관계자의 귀띔이다.
“최근 친박계 내에서도 인도의 카스트제도같이 서열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절반은 사실이다. 친박계 핵심이라는 A 의원에 대해서는 친박 핵심들 사이에서 비토하는 분위기가 있다. A 의원이 지금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민심 관리를 하고 있지만 한쪽 발은 불출마를 염두에 두고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남권에서 A 의원과 같은 나이대의 친박계 중진들이 동반 불출마할 경우엔 친박계로선 물갈이의 절박함, 공천 개혁의 상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관철하려 들 것이다.”
선수(選數) 한 번 더하는 것보다 명예로운 퇴장을 권하면서 후일을 담보할 수 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다소 앞선 이야기도 들린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친박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진들이 대거 불출마하고 이들이 불출마 명분으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현역 물갈이와 친박계가 주장하는 공천 개혁에 명분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친박계는 어떻게든 현역 의원에게 불리한 룰, 즉 새로운 친박을 내세울 수 있는 룰을 관철해 제20대 국회 세력 재배치를 도모해야 한다. 이런 작업에는 ‘공천 개혁’이란 포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진박’의 추가 차출설이다. 이는 TK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청와대 출신인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윤두현 전 홍보수석은 현재 대구 달성(이종진 의원 지역구)과 서구(김상훈 의원)에서 발품을 팔고 있지만 지역을 옮겨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 스스로 ‘진실한 사람들’로 분류한 이재만 전 동구청장의 대구 동구을(유승민 의원)과 이인선 전 경북도 부지사의 중·남구(김희국 의원)에도 다른 인사를 꽂을 것이란 소문이 팽배하다. 급이 맞지 않는 신인과 현역이 매칭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 등 공식 회의석상에서 두 차례나 ‘진실한 사람들’을 이야기했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 현역 의원들과 큰 차이를 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추가 차출설과 출마 지역구 재편설이 나도는 이유로 보인다. 그래서 안종범 현 청와대 경제수석과 신동철 정무비서관, 최재경 전 대구지검장 등이 새롭게 투입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진박의 출현이 다소 이른 감이 있었다. 현역 물갈이와 맞물려 진박의 참신성을 어필하려면 타이밍 조절이 필요했는데 실기한 측면이 있다”며 “공천룰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2월쯤 새 진용을 짜 주민들에게 선보이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2월 박 대통령이 재차 정치적 함의가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이런 한편에선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 진용을 새누리당 내 공격수로만 채울 것이란 말이 돈다. TK 출신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총선에서 TK에 도전하려면 오는 청문회를 반드시 통과해야 하기 때문. 만약 후임자가 낙마하게 되면 공직자 사퇴 시기를 놓쳐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TK와 관련해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공천 양도설도 떠돈다. 오픈프라이머리에서부터 현행 당헌당규까지 상향식 공천 의지를 꺾어왔던 김 대표가 TK만큼은 친박이 재편할 수 있는 룰로 양보하고 나머지 지역의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이야기다.
친박계로서도 수도권과 충청권에선 늘 비박 세력이 있어왔지만 이번 국회에서 TK 출신 비박계가 출현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갈라먹기라도 해서 TK를 모두 충실한 친박 세력으로 재편해야 ‘포스트 박근혜’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계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대권을 꿈꾸는 김 대표로서도 TK를 뺀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보할 수 있어 서로의 니즈(Needs)가 맞아떨어진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TK의 현역 우세설도 만만찮아 친박계의 이런 시나리오들이 제대로 먹혀들지 종잡을 수 없다는 말도 있다. 대구에서는 지난 19대 총선 당시 12명 의원 중 7명이 물갈이됐다. 5선의 홍사덕(서구), 4선급에서는 박종근(달서갑) 이해봉(달서을) 의원이, 재선급에서는 이명규(북갑) 주성영(동갑) 의원, 초선에서는 배영식(중·남구) 의원이 물갈이 됐으며 박근혜 대통령(당시 4선·달성)은 비례대표를 받았다.
합이 ‘22선’에 이르는 의원들이 날아가고(?) 7명의 초선 의원들로 물갈이된 대구 정치권은 이후 비참한 상황을 겪기 시작했다. 당 대표 후보 한 명 배출해내지 못하면서 정치적 위상이 꼬꾸라졌고 초선들도 제 역할을 하기까지 2년 가까이를 ‘하세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구 일각에서 ‘구관이 명관’이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지난해 ‘배신의 정치’ 파문 당시의 여론과는 다른 양상의 분위기가 일고 있다는 전언이다. 게다가 새로 출전하는 정치 신인들이 모조리 ‘진박 마케팅’을 이어가면서 지역 여론 중에는 “진짜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사람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고 한다.
게다가 대구 북갑에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과 김종필 전 법무비서관이 동반 출전하더니 전 전 관장은 고향인 울진으로 유턴하고 김 비서관도 돌연 불출마하면서 혼란을 빚었다. 친박 핵심이라는 조원진 의원의 대항마로 남호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나선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대구 중·남구의 경우 현역인 김희국 의원에 맞서 9명의 후보가 나섰는데 대부분 친박, 진박을 자처하고 있어 반감 여론이 적잖다고 한다.
늘 큰 선거 직전에는 이런 설들의 향연이 있었다. 일부는 현실이 됐고 일부는 소설이 됐다. 어떤 설이 현실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