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석호(사진)는 “브리티시오픈에서 최경주의 조 언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한국 프로골프협회 | ||
마지막 라운드에서의 부진으로 결국 아쉬운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지만 PGA 첫 출전에서 메이저대회 우승에 근접했던 허석호의 활약은 국내 골프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초반에 부진을 면치 못했던 최경주(32·테일러메이드)도 막판 뒷심을 발휘, 역대 한국인 최고 성적인 22위에 오르는 등 ‘남의 나라 잔치’로만 여겨졌던 브리티시오픈에서 코리아의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정상급 골프무대에서 오랜만에 만난 허석호와 최경주. 두 사람만의 특별한 사연을 소개한다.
일본 PGA투어 아이풀오픈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7월30일 출국한 허석호는 지난 브리티시오픈에서 좋은 성적을 내게 된 비결로 PGA 선배격인 최경주의 충고를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경기 3일 전에야 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시차적응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곧바로 연습에 들어간 터라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대회 2라운드가 끝나고 다음날 아침, 너무 피곤해서 연습을 쉬려고 했다. 그런데 (최)경주형이 바람이 어떻게 불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연습을 쉬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경험 있는 선배의 조언을 무시할 수가 없어 마음을 가다듬고 연습을 했는데, 그 날은 전혀 다른 방향의 바람이 불어왔다.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허석호가 초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데엔 최경주의 충고 한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 둘은 지난해 12월 세계 각국 대표들이 기량을 겨루는 ‘국가 대항 EMC 월드컵 골프대회’에 한국대표로 짝을 이뤄 출전해 역대 최고 성적인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 대회가 끝난 뒤 허석호는 “둘이 함께 플레이를 하면서 나의 단점을 알게 됐고, 세계무대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월드컵 골프대회에 출전할 당시 허석호는 상당히 침체된 상태였다. 직전에 치러진 PGA 퀄리파잉스쿨(Q스쿨)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월드컵 골프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허석호는 올 시즌 자신이 활약하고 있는 일본무대에서 상금랭킹 2위에 오르며 브리티시오픈 출전권을 획득했고, 첫 출전에서 초반 한때 선두를 질주하는 파란의 주인공이 됐던 것.
▲ 최경주(32·테일러메이드) | ||
서로 아껴주는 두 선수는 적지 않은 공통점도 갖고 있다.
최경주는 국내무대를 거쳐, 일본무대에 진출한 뒤 랭킹성적을 바탕으로 브리티시오픈에서 선전하고, PGA투어 Q스쿨에 도전해 PGA 선수로서의 화려한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허석호도 선배 최경주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이번 브리티시오픈에서 ‘명함 돌리기’에 성공한 허석호는 올 가을 Q스쿨을 통해 PGA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그뿐 아니다. 타고난 천재성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도 똑같다. 최경주가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허석호도 이에 못지 않다. 허석호의 아버지 허재현씨(한국프로골프협회 경기위원)는 “브리티시오픈대회에서 귀국한 다음날, 새벽 6시에 곧바로 연습장으로 향했다. 원래 성실해서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또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두 사람의 성격도 비슷하다. 말이 많지 않은 스타일에다 항상 게임이 끝나면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겸손해하지만 내심 강한 승부욕을 갖고 있다. 술이나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점에서도 닮았다. 최경주는 PGA에 뛰어들면서 담배를 끊었고, 허석호는 아예 피우질 않았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선수는 골프 스타일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최경주가 과감한 파워플레이어라면 허석호는 상당히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한다. 또 최경주가 퍼팅감각이 탁월한 데 반해 허석호는 아이언샷이 일품이다.
PGA무대는 명실공히 세계최고 골프선수들의 경연장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설 수 있는 PGA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최경주와 이제 PGA를 향해 첫 걸음을 내딛은 허석호의 특별한 우정이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