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MC 채진(왼쪽)과 이은하가 ‘스포츠=남성’이라는 등식을 깨뜨 리며 자신이 맡은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스포츠=남성’이라는 방정식을 깨뜨리면서 방송의 신(新)혁명을 주도하는 여성 MC들과 제작진들. 그들만의 특별한 사연을 소개한다.
SBS <스포츠 와이드>(월∼금 새벽 0시50분)의 ‘안방마님’ 채진(25). 여성, 그것도 아나운서가 아닌 미스 유니버시티 경력의 리포터 출신이 메인 스포츠 뉴스 진행자로 나섰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묘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재명 SBS 스포츠국본부장은 “잠자리에 드는 시청자들을 깨우기 위해선 여성 MC가 적당하다는 의견의 일치를 봤다”며 “여성 MC가 밝게 분위기를 이끌면서 스포츠 전문기자들이 적절하게 어시스트하는 체제에 대한 시청자들이 반응이 예상외로 좋게 나타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새벽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평균 3∼4%라는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며 만족해했다.
▲ 채진 | ||
“축구에 자신 있었는데 심사위원께서 나머지 3명에겐 월드컵에 대한 질문을 하더니 저에겐 ‘복싱은 몇 라운드까지 하냐’고 묻더라고요. 한참 진땀을 빼다 ‘쓰러질 때까지 하죠’라고 대답했더니 ‘녀석 재밌네’하고 웃으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특이해서 후한 점수를 주셨다고 하네요.”
채진의 기용 시기를 놓고 말이 많았단다. ‘봄 개편 때 바로 투입하느냐 6개월 교육 후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고. 설왕설래 끝에 결국 채진은 3월부터 실전에 투입됐다.
“정말 힘들었어요. 앞이 안보였죠. 스포츠에 대한 지식도 없을뿐더러 방송 진행 경험도 전무했으니까요. 방송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시용) 상품이 아니냐’는 일부의 목소리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그때마다 <스포츠 와이드> 팀 기자들이 따뜻하게 감싸주셔서 힘을 얻곤 했죠.”
실수담을 물으니 셀 수도 없다며 웃는다. “한번은 NBA 샌 안토니오의 던컨을 ‘던킨’으로 읽었어요. 도너츠가 되게 먹고 싶었나봐요. 홈페이지에서 시청자들이 ‘채진님! 차기 ‘던킨’ CF 나오시나요?’라고 짓궂게 물어 당황한 적이 있었어요.”
팬들은 채진의 인기 비결 중 하나로 섹시한 의상을 주저 없이 꼽는다. 제작진도 세 번이나 코디네이터를 교체할 정도로 의상 선택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채진의 반응이 궁금했다. “조금 민망해요. 몸에 붙는 ‘쫄티’나 가슴 부위가 깊게 패인 옷은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중책을 맡은 지 4개월째. 오후 내내 방송 준비를 해야 하는 탓에 피곤하기도 하고 특히 남자친구 사귈 시간이 없어 너무나 아쉽지만 ‘야간 자율학습 끝나고 채진의 미소를 보며 잠이 든다’는 학생 팬들의 격려를 들을 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펄펄 힘이 샘솟는단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각 방송사에서 드라마 출연 제의가 밀려들지만 그는 아직까진 현재의 자리에 충실하고 싶다는 입장을 보였다.
▲ 이은하 | ||
<아이 러브 스포츠>의 ‘주인장’인 그녀는 멀티 플레이어다. 진행뿐 아니라 섭외, 취재, 대본, 편집 등의 업무가 다 그녀의 몫. TV처럼 분야마다 인원이 배치되지 않는 라디오이기 때문이다.
오랜 리포터 생활로 친해진 스포츠 선수들이 보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천수, 심권호, 이승엽, 최희섭, 정은순 등 ‘동생, 누나, 언니’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프로그램 중 가장 반응이 좋은 ‘이은하가 만난 사람’ 코너를 빛내준다고 한다. “너무나 감사하죠. 특히 공개되지 않은 사연이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을 때면 더욱 그래요.”
프로그램 중간에 선수들이 직접 들려주는 ‘여러분은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를 듣고 계십니다. 전 ○○○입니다’라는 로고송 쟁탈전도 장난이 아니란다. 만나는 스포츠 스타들마다 “왜 나는 안 시켜 주냐”며 은근히 압력을 행사해 온다고. 최근 프로야구 LG의 유지현이 아내와 차 안에서 즉석으로 로고송을 만들어 보내주는 등 선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볼 때마다 진한 감동의 물결이 출렁인단다.
아직 미혼인 그녀는 두산 홍성흔의 결혼 발표 소식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과거 리포터 시절 동대문야구장 직원이 ‘점찍어준’ 경희대 포수가 바로 홍성흔이었어요. 얼마 전 방송 인터뷰 도중 서로 ‘내가 너 찍었었다(이은하)’,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홍성흔)’ 등 위험 수위를 넘는 끈적한(?) 대화가 오고가 방송사고가 터질 뻔했죠.”
이은하는 청소년, 부부 청취자들이 꾸준히 늘고 팬클럽도 생겨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리포터에서 MC로 올라선 만큼 미운 털이 박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아직은 진행자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과의 진정한 차별화를 추구하면서 전문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로 거듭나겠습니다.”
이밖에 MBC 이정민 아나운서와 KBS 이승연 아나운서도 각각 주말 MBC <스포츠 뉴스>와 KBS <뉴스광장> 스포츠 뉴스에 기용돼 눈길을 끌고 있다. 둘 다 1년 미만의 짧은 경력임에도 불구,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식견을 과시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MBC 뉴스본부 윤재근 취재부장은 “오히려 여성의 부드럽고 세련미 넘치는 보이스컬러가 스포츠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또한 ‘여자가 스포츠를 알면 얼마나 알까’라는 의문이 곧 시청률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호의적인 만큼 앞으로 계속 여자 MC들을 중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점차 ‘스포츠 프로를 흔드는 손’으로 커가는 여성 MC들. 이젠 여성 캐스터가 축구 중계를 맡아 ‘골이에요∼골’을 외치는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사건은 아닐 듯하다.
유재영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