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대표팀을 맡은 김재박 감독. 이종현 기 자 jhlee@ilyo.co.kr | ||
국가대표팀 감독은 모든 지도자들에게 명예와 선망의 자리지만 새 얼굴들을 통솔하며 승부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다 보면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게 마련. 역대 드림팀 감독 등이 겪은 그들만의 에피소드를 모았다.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가장 화려한 경험을 가진 지도자는 주성로 감독(52·인하대)이다. 주 감독은 지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최초로 프로와 아마를 망라한 ‘드림팀Ⅰ’을 지휘해 우승한 것을 비롯, 이듬해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일궈냈다. 또 코치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도 일조했다.
이 때문에 주 감독은 야구계에서 ‘운이 좋은 사람’으로 통한다. 심지어 “주 감독을 코칭스태프에 넣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징크스까지 거론될 정도.
▲ 왼쪽부터 주성로 김응용 김인식 감독. | ||
하지만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경우 대부분이 스타이기 때문에 감독의 입김이 언제나 쉽게 먹혀드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대만에서 펼쳐진 제34회 야구월드컵에 출전했던 드림팀Ⅳ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령탑은 ‘아마추어’팀을 이끌던 김정택 감독(50·상무). 김 감독이 고교시절 야구를 그만둔 데다, 오랫동안 상무에만 몸담았기 때문인지 프로선수들 사이에선 김 감독을 암묵적으로 무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프로에서 펄펄 날던 J는 시늉만 내는 소극적 플레이를 펼쳤고, H도 아프다며 사실상 ‘태업’에 들어갔다.
결국 드림팀Ⅳ는 일본, 대만에 연패하며 6위에 머무르는 기대 이하의 성적만 남겼다. 당시 김정택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일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프로선수들을 겨냥해 ‘회한’의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야구계에서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김응용 감독도 두 차례 드림팀을 이끌면서 적지 않은 곤욕을 치렀다. 김 감독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드림팀Ⅲ를 이끌고 참가해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경기기간 동안 일부 선수들이 숙소를 빠져나가 새벽까지 카지노에서 도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 선수 통솔력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져가도 김 감독은 특유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당시 코칭스태프로 참가했던 한 야구인은 “김 감독이 입을 다물어버리자 오히려 선수들이 눈치를 보았다”고 말했다. 침묵으로 암묵적인 분노를 드러냄으로써 선수단의 자성과 단합을 유도한 것.
대표적인 ‘덕장’으로 손꼽히는 김인식 감독(56·두산 베어스)도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기간에 선수들이 물의를 일으켜 마음고생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 ‘드림팀Ⅴ’의 사령탑을 맡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예선리그를 마친 뒤 선수촌을 이탈, 부산시내에서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고, 한 선수는 주먹다짐까지 벌여 파출소에 연행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다음날 경기에서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김 감독은 당시 이로 인해 적잖은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지도자들에게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 번쯤 맡고 싶은 영광의 자리지만 실제 국내 프로야구팀 감독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은 성적을 내면 당연한 결과로 여겨지고, 성적이 부진할 경우 돌아올 화살이 두려운 데다 소속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김인식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는 것이 크나큰 영광이지만 현실적으로 프로야구 정규시즌 중에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명예 이외에 현실적인 대우도 프로팀 감독에 비해서는 부족한 편. 대한야구협회는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대회에 출전할 경우 5백만원을 출전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보통 한 대회에 준비기간을 포함해 보름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 억대 연봉을 받는 국내 프로야구감독들에게 5백만원의 출전수당은 ‘껌값’에 불과하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