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트트랙에서 ‘일가를 이뤘던’ 전이경은 이제 골프퀸을 꿈꾼다. 그것도 모자라 프로테스트를 통과한 뒤엔 미국유학을 떠난다고 한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여름 땡볕 아래서 오랜 시간 동안 골프채를 휘두르며 사진 촬영을 하고 온 탓”이라고 설명을 달았지만 약속시간에서 40여 분을 더 기다린 ‘이쪽’이나 3전4기 만에 골프 세미프로테스트에 합격한 이후 앵무새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그쪽’이나 기분이 안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색한 침묵을 깨트린 ‘주범’은 상 위에 올려진 고기와 술. 감칠 맛 나는 샤브샤브 요리에 곁들인 시원한 소주 한잔이 혀끝을 적시면서 ‘이쪽’과 ‘그쪽’은 순간, 만남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었고 카메라 셔터 소리에 비로소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때 ‘쇼트트랙의 여왕’으로 칭송 받던 전이경(27). 당당한 프로 골퍼를 꿈꾸며 얼마 전 세미프로테스트에 합격한 것은 물론, 철인 3종경기(트라이애슬론)에도 최근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대학 강사, IOC선수분과위원 등 굵직굵직한 타이틀만 열거해도 본업과 부업이 헷갈릴 만큼 하고 싶은 것도, 또 하고 있는 일도 많은 맹렬 여성이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결과가 창대해지는 연속적인 행운 속에서 그는 여전히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 길고 긴 여행을 준비중이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앵무새’같이 반복적인 인터뷰가 안 되려면 술의 힘이 필요했는데 아쉽게도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주치’(酒痴)였다. 그럼에도 솔직함을 무기로 내세운 그의 입담 속에서 휴가 중 달려나와 ‘취중토크’를 진행하는 안타까움을 쉽사리 털어낼 수 있었다.
“골프는 정말 취미로 시작했던 거예요. 거창하게 프로골퍼를 목표로 골프채를 잡은 게 절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일요신문> 때문에 골프에서 발을 못 뺐어요. 제가 골프를 시작한다고 처음 보도한 곳이 <일요신문>이었거든요. 그 후 여기저기서 전이경이 프로골퍼를 꿈꾼다고 기사화하는 통에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지금은 고맙죠. 프로골퍼가 되게끔 책임감을 선물해준 기사였으니까요.”
털털한 그의 성격상 ‘기사 잘 써달라’는 차원의 홍보성 멘트가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않은 기사가 처음 나갔을 때의 당혹감이 지금은 감사함으로 뒤바뀐 상황 변화가 참으로 재미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좀 만만하게 봤어요. 스코어가 워낙 잘 나왔거든요. 많은 연습을 하지도 않았는데 금세 싱글이 됐으니까요. 그런데 그 후가 문제더라고요. 베스트 스코어인 74타를 도통 넘어서기가 힘든 거예요. 그래도 골프가 재미있어요. 가끔은 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때 2관왕을 한 이후 바로 골프를 시작했더라면 훨씬 폼 나는 골퍼가 돼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짧게는 50초, 길게는 5분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쇼트트랙의 ‘냉정함’에 염증을 느낄 무렵 알게 된 골프는 전이경을 지금껏 살아온 세상과 다른 별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평균 3시간이 넘는 긴 경기 시간이 지루하기보단,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여유와 긴장을 즐기는 또 다른 묘미를 깨닫게 했다.
“‘취중토크’는 좀 재미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술을 잘 못 마시지만 그래도 술자리 분위기가 나야 하는 거잖아요.”
알아서 화제를 바꾸는 그의 재치가 돋보였다. 전이경은 술자리에서 ‘인기 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비록 술잔을 부딪치는 횟수로는 ‘참가자격 미달’이지만 술값 내는 ‘물주’에다 뒤처리 전담 해결사, 그리고 대리 운전기사까지 ‘1인다역’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니는 희생정신 덕이란다.
“술 안 마시고 새벽 두세 시까지 놀아봐요. 정말 괴로운 일이죠. 그래도 ‘안주발’ 탓하지 않고 묵묵히 절 받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할 때도 있어요. 노래요? 술 못하는 사람이 노래까지 안하면 쫓겨나게요. ‘가’는 좀 되는데 ‘무’가 영 신통치 않아서. 제가 ‘술치’에다 ‘몸치’거든요.”
전이경은 자신을 ‘O형을 가장한 A형’에다 ‘여자를 가장한 남자 성격’이라고 규정지었다. 애교와 내숭, 콧소리 등과는 체질적으로 안맞는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지금까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고백이 새빨간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이게 사랑이구나’ 하는 느낌은 한번도 없었어요. 어떤 남자한테도 ‘사랑한다’는 얘길 해보지 못했어요. 사실 운동할 때까지만 해도 남자 사귀면 큰일나는 줄 알았거든요. 물론 속으로 연정을 품었던 사람은 있었죠. 그 사람 앞에선 절대 표현 못하고 혼자서 끙끙댔는데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어요.”
한때 전이경에게 설레임을 안겨줬던 주인공은 같은 학교인 연세대 농구부의 C군이었다. 운동선수를 이성으로 좋아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그였지만 C의 주변을 맴돌며 마음을 주고 말았는데 결국 그가 졸업 후 프로팀에 잠시 몸담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이경은 그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 회장님(김운용 위원)이 평창올림픽 유치 문제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 게 참으로 안타까워요. 당시 저도 프라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일에 관한 코멘트를 요구받은 일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진실이 무엇인지 저도 잘 모르니까요.”
그가 방송 해설자로도 활동했을 때의 일이다. 지난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이 오노한테 금메달을 빼앗기는 순간 마이크 앞에서 “이건 말도 안됩니다”를 수십 번 외쳤다고 한다.
침착함과 냉정함이 요구되는 해설가가 ‘본분’을 잊고 현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놓은 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실수’에 대해 비난보다는 ‘더욱 인간미가 느껴진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전해 듣고는 새삼 방송이 주는 매력과 위력에 대해 곱씹어봤다고 한다.
“가을에 골프 프로 테스트가 있어요. 무사 통과를 바랄 뿐입니다. 그 이후엔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에요. IOC위원(선수분과)을 하려면 언어 구사 능력 없인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좀 하는 일이 많죠? 일만 벌여놓고 수습을 못할까봐 걱정이에요.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기회가 주어질 때 열심히 살아야죠.”
골프는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라 포기하고 싶지 않고 공부는 지도자보다는 체육계에 남아 이름을 남기고 싶기 때문에 유학을 마다하지 않는 거라고 친절한 설명을 단다.
“골프, 정말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에요. 본전 뽑을 생각 했으면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참 근데 언니, 골프 선수 중 누가 술을 잘 마셔요? 네? 누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