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 한자리를 자기 몫으 로 챙겼던 ‘팽이’ 이상윤. 어느덧 그도 올드스 타가 되어 차범근 축구교실 코치로 일하고 있 다. | ||
이들 가운데 최순호, 조광래, 황선홍, 조민국, 조영증 등 협회 행정가나 프로, 대학팀 지도자로 활약하며 꾸준하게 팬들과 접촉하는 스타들도 있지만 은퇴 후 자취를 감춰버린 이들도 적지 않다. 옛 명성을 뒤로한 채 ‘야인’생활을 하는 이들 스타들의 ‘8월’을 추적해봤다.
80년대 ‘아시아 최고의 스토퍼’로 명성을 날린 정용환. 그는 94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후 소리소문 없이 잉글랜드로 2년간 축구 유학을 떠났다. 이후 97년 창원에서 ‘정용환 축구교실’을 창단하고 99년부터 지난해까지 축구협회 영남지역 유소년 전임 지도자로 활동하는 등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바삐 움직여 왔다.
그러나 최근 축구계 일각에서 몇몇 좋지 않은 입소문이 퍼지던 와중에 지난 8월1일 조용히 브라질로 출국했다. 지난 15일 80년대와 90년대 올스타 간의 경기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출전을 포기했다. ‘정용환 축구교실’측은 그의 거취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은퇴 후 훌쩍 모습을 감췄던 83세계청소년대회 4강 주역인 ‘필드의 여우’ 김판근은 몇년 전부터 호주로 건너가 축구유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97년 말 안양에서 은퇴를 결심한 후 선배의 초청으로 우연하게 호주를 찾았다가 현지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당시 ‘어학 연수와 선수생활을 병행하지 않겠느냐’는 현지 1부 마코니 클럽 감독의 제의를 받고 2001년 6월까지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게 계기가 됐다.
김판근은 현지에 ‘BSP(Brain Soccer Program) 축구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축구에 소질 있는 교육생들은 호주축구협회에 등록해 경기에 출전시키고 매년 우수 선수를 선발해 유럽 클럽에 연수를 보낼 예정.
낯선 땅에서 사업을 하다보니 애로가 많았다는 김판근은 ‘국내팬들을 만나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앞으로 3년 동안은 호주에서 영어 공부와 축구학교 사업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그 이후 ‘솔깃한’ 제의가 들어온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2001시즌 후 부천과 재계약에 실패하며 필드를 떠난 ‘팽이’ 이상윤은 지난해 6월부터 차범근 축구교실 코치로 활약중이다. 현재 14명 코치들을 총괄하면서 초등부 A팀을 지도하고 있다. 이상윤은 2002년 초 중국 2부(갑B)리그 진출이 좌절된 이후 진로를 고민하다 98년 월드컵 당시 자신을 황태자로 점찍어준 ‘은사’의 품에 안겼다.
94미국월드컵 대표로 뛰는 등 현역 시절 강인한 체력과 탄탄한 수비력을 과시한 ‘황금박쥐’ 정종선은 고교 무대에서 ‘신흥 강호’로 부상한 언남고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2001년 6월 감독으로 정식 부임한 정종선은 이듬해 추계 연맹전 우승과 무학기 대회 준우승을 일궈냈고 지난 7월 백록기 대회에서도 팀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부터 몇몇 프로 구단의 코치 영입 제의가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조련이 더 마음에 든다는 정 감독이다.
역시 94미국월드컵 대표 출신으로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일본전에서 그림 같은 오른발 크로스로 황선홍의 헤딩 역전골을 이끌어냈던 최대식. 요즘 그는 올해 11월 창단 예정인 의정부 경민고 감독으로 취임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밖에 93세계올스타전과 94미국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대표팀 부동의 오른쪽 풀백 신홍기는 브라질로 떠나 바스코다가마 2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으며, 90이탈리아월드컵 스페인전에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터뜨린 ‘원조 캐넌슈터’ 황보관은 현재 일본 J1 오이타 트리니다에서 유소년팀을 맡고 있다.
자신의 이름 석자는 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현역 시절 팬들이 보내준 사랑만큼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올드스타들. 이들은 은퇴 후 프로나 대학 지도자로 입문하는 관례에서 벗어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앞길을 헤쳐나가고 있다.
유재영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