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반전 9-0으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짓자 경기장 분위기는 북한 응원단의 주도 아래 들어갔고 남측 관중들의 수많은 손놀림에 의해 한반도기가 ‘월장’해서 북한 응원단에 전해졌을 때는 응원단 전체가 눈시울을 붉히며 펄쩍펄쩍 뛰는 등 감격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20대 전후의 앳된 얼굴이면서도 마치 밀랍인형처럼 변함없이 웃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북한 응원단원들. 이들 중 상당수는 행사장을 벗어난 후 남측 기자의 개별 인터뷰 접촉에는 20대 특유의 순진함과 순박함을 그대로 드러냈고 가끔은 기자한테 개인적인 궁금증을 물어오기도 했다.
북한 응원단원들과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실로 어려웠지만 이틀 동안 이들을 밀착 취재하며 직접 들은 내용과, 이들과 층을 사이에 두고 숙소를 같이 쓰는 남측 안전요원들이 털어놓은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지난 23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의 환영 오찬회를 마치고 나온 북한 응원단원들 중 ‘김형석사범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다는 조숙영씨(19)는 식사로 나온 음식과 공연 내용 등에서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치가 제일 맛있었음네다”라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고 다소 지루한 인사말과 공연 등이 남측의 문화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소속 대학을 밝히진 않고 피아노를 전공한다고만 말한 랑대향씨(20)는 취재진 중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거나 런닝셔츠 차림의 카메라맨들을 가리켜 “저게 무슨 모양새입네까”라며 “남한엔 영화배우들이 많은 것 같슴네다”라고 약간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즉 북한에선 멋을 내기 위해 염색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남자가 멋을 내는 직업은 예술인들한테나 가능한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취재기자들은 좀 덜했지만 ENG카메라나 소형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방송 제작팀들 중엔 유독 금목걸이를 하고 머리에다 무스를 바른 데다 반바지에 샌들 차림을 한 남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랑대향씨는 그 부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차림새로 생각했던 것.
▲ U대회가 펼쳐지는 경기장 곳곳엔 한반도기가 넘실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1). 성악을 전공한다는 북한 응원단의 김은정씨(2). 선수촌을 거닐고 있는 북한 여자 축구팀(3). 임준선 기자 | ||
김은정씨는 응원단 중 항상 맨 앞줄에 앉아 풍부한 표정과 율동으로 응원을 이끌었는데 돋보이는 외모와 밝은 미소로 인해 사진기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했다. 평양에서 할머니, 부모,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는 그는 남측 관중들로부터 대형 한반도기를 받아들고는 “너무 기분이 좋고 감격스럽다”며 기자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 댔다.
그는 ‘미인형 얼굴이라 남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을 것 같다’고 묻자 수줍은 미소를 띠며 “그렇지 않다”면서 남자친구의 존재 유무에 대해선 “아직 없다”는 짤막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응원단원은 “데이트는 주로 어디서 하느냐”는 물음에 “대동강변이 최고의 인기 장소”라고 말했고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는 북한에서 여대생을 상징하는 옷차림이어서 대학생이 아닌 일반 여자들이 가장 입고 싶어하는 옷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남한 방문 소감을 밝히던 그는 “차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다”면서 “대구의 차들은 모두 어디서 가져온 것들이냐”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해왔다. 남측에서 전시 행정용으로 전국의 차들을 모두 모아서 대구에다 갖다놓았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북한 응원단 버스가 지나가는 길들에 집중 배치시켜놓은 게 아니냐는 뜻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북한 응원단원들은 대학생 신분인 만큼 남측 대학생들의 실상에 대해 궁금해 했는데 대부분 남측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이곳 대학생들이 공부를 못하고 직장을 다니기 어려운 걸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기자가 그렇지 않다는 내용으로 짧게 설명해 주었지만 ‘설마’하는 표정을 지으며 기자의 말을 믿으려 하질 않았다.
한편 북한 응원단과 함께 생활하는 남측 안전요원들은 처음 대구에 도착할 때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자유스러워졌고 지나가다 인사를 하면 처음엔 대답도 안하다가 지금은 식사를 하거나 복도에서 마주칠 땐 미소를 띠며 가벼운 인사를 건넬 정도가 됐다고 말한다.
남측 요원 중 국가정보원 출신이라고만 밝힌 A씨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하다. 특히 서울도 아닌 지방인데 시민들의 옷 차림새나 수많은 차량, 높은 건물 등을 보며 기가 죽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숙소에서 식사하는 풍경도 천편일률적이라고 한다. 누구 하나 맛있게 밥을 먹는 사람이 없고 마치 밥알을 세는 듯이 천천히 식사하는 단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북측 임원한테 A씨가 그 이유를 묻자 너무 식사를 맛있게 하면 마치 북한에서 못 먹고 산 것처럼 비쳐질까봐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라고.
A씨는 공식적인 보도에는 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 때 참가했던 북한 응원단원이 이번엔 모두 빠졌다고 했지만 실제론 지난해 부산에 왔었다고 털어놓은 대학생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요원인 B씨는 북한 응원단 도착 첫날 숙소인 대구은행 연수원 내 휴게실의 TV를 치운 것과 관련해서 “보도에는 북측의 요구로 텔레비전을 치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우리 쪽에서도 원치 않았다. 당시 노사분규로 인해 연일 데모하는 장면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던 터라 그런 모습을 응원단이 볼 경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며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북한 응원단은 경기장 응원을 위해 사전에 많은 준비를 했고 실제로 응원 도구와 옷가지 등이 담긴 물품들이 화물차 3대를 꽉꽉 채울 정도였다는 것이 B씨의 설명.
▲ ‘최강실력’을 뽐내고 있는 북한 여자축구팀의 한 선수가 다이내믹 한 돌파를 하고 있다(왼쪽). 북한 응원단이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 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이동하고 있다. | ||
안전요원 C씨는 향후 10년간 북한 응원단이 방한할 수 있는 국제대회가 없기 때문에 이번 응원단원들은 응원단으로 뽑힌 사실에 대해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참가 의미를 물을 때마다 “장군님 덕분”이라는 대답을 달고 산다고 한다.
C씨는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로 구성됐다고는 하지만 응원단원들의 분위기를 통해 고위급 인사들의 자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인상과 생활 태도 등이 대부분이었다며 가끔은 이름과 나이, 소속 대학이 진짜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북측 임원 중 몇몇은 먼저 안전요원들에게 숙소에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청하다가도 요원들이 술자리를 마련해 놓으면 “나중에 하자”며 뒤로 뺀 뒤 북측 기자들한테 “남한 요원들이 우리랑 술 마시기를 꺼려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해 안전요원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응원단원들은 우리측 여자 요원들과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름만 묻고는 정작 사적인 대화는 꺼린다고 한다. 이들은 이중삼중의 삼엄한 경비망을 거쳐야만 도착할 수 있는 숙소에서조차 두꺼운 커튼을 치고 자신들의 생활을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남측요원은 전한다.
시민들 앞에선 한껏 미소 띤 얼굴로 악수와 인사를 마다하진 않지만 정작 숙소에 들어서면 북측 임원들의 엄격한 통제 하에 ‘작은 북한’이 돼 그들만의 생활로 돌아갔던 것. ‘미녀’들로 대변되는 이들 북한 응원단이 대구를 떠나 김해공항에서 출국할 때 정작 그들의 가슴엔 무엇이 남아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