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현 부친 김정길 씨 | ||
얼마 전 ‘한국 A선수 아버지가 딸이 친 공을 치기 좋은 위치에 옮겨놓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한국 B선수의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였다’는 루머가 미국 선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결국 LPGA 사무국측이 나서서 ‘험악한’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사태로까지 확대됐다.
당시 투어 커미셔너는 한국선수들을 따로 불러 ‘경기 도중 부모에게 조언을 받지 말 것’은 물론 ‘한국말로 대화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국내 일부 매스컴에선 LPGA 사무국의 조치를 인종차별로 몰고 갔지만 상당수 한국선수들의 아버지들은 ‘곪은 것이 터진 것이지 인종차별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머나먼 이국에서 운전기사, 주방장, 매니저, 가이드 등 ‘1인다역’을 마다하지 않고 딸의 성공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아버지들로선 일련의 불미스런 사태로 자신들의 역할이 매도당하는 현실이 정말 서글프고 화나는 일. 하지만 이들은 미국 땅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기까지엔 몇몇 아버지들의 ‘부정행위’가 한몫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기자의 전화 인터뷰 요청에 몇몇 한국선수의 아버지들은 ‘누워서 침 뱉기’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던 반면 익명을 요구하며 사실을 가감 없이 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아버지들도 있었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여기 있는 아버지들은 진상을 다 알고 있다.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마다 ‘한국서도 그랬는데 뭐 어떠냐’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 정말 낯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이름을 밝히길 극구 꺼린 한 선수의 아버지는 한 차례 폭풍은 지나갔지만 잔재와 뿌리가 남아 있어 언제 또다시 후폭풍이 불지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박세리, 김미현이 활약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2001년 이후부터 미국 선수들 사이에서 한국 선수와 아버지가 경기 중에 사인을 주고받거나 아버지로부터 코치를 받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전했다.
“성적 내는 데에만 사로잡혀 양심을 버린 아버지들의 지나친 부정이 한국 선수들 전체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똥바가지를 뒤집어쓴 심정이라면 이해하겠나.”
그는 이번에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지목된 A선수의 아버지 말고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 선수의 아버지가 더 주도면밀하게 부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폈지만 사진을 찍어놓거나 물증을 제시할 수가 없어 그를 고발하지 못하고 있다며 격앙된 감정을 표현했다.
한편 김미현의 아버지 김정길씨는 “외국 선수의 부모보다 한국선수 부모의 뒷바라지가 각별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선수가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온갖 잡다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행위를 ‘바짓바람’으로 매도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건 너무나 서글픈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골프는 매너 운동이다. 매너가 좋지 못한 선수들은 이 사회에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로 인해 딸이 욕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 박세리 부친 박준철 씨 | ||
선수 아버지들 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박준철씨는 딸 박세리가 LPGA에 데뷔한 뒤 2년 동안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코치와 조언은 물론 기자들을 상대하는 일까지 깔끔하게 처리해냈다.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을 희망하는 딸이 제대로 된 길을 밟아갈 수 있도록 이처럼 터를 닦아 놓은 뒤, 미련 없이 딸을 현지에 홀로 두고 미국 생활을 청산했다. 박세리가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미국의 ‘한국 아버지들’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미국에 들어가서 한번 부모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미국이나 외국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니까 한국선수들이나 부모들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보니 서로를 깎아내리기 위한 험담만 늘어나더라. 그러다보니 선수들끼리도 서먹서먹해지고 불편한 관계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박씨는 박세리의 곁을 떠나게 된 과정과 결심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내 인생의 모든 걸 바쳤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딸을 위해 희생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순간적인 외로움과 안타까움은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부모가 옆에 있다보니 세리의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다. 나도 세리 일이라면 ‘한 극성’ 하는 편이라 혼자 놔두고 오기가 쉽진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골프는 혼자 하는 것 아닌가.”
▲ 박희정 부친 박승철 씨 | ||
“매일같이 있으면 아버지의 중요성을 모른다. 그래서 요즘엔 (세리가) 자꾸 들어오라고 해도 잘 가지 않는다. 딸이 정상에 올라섰으니 아버지는 더욱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
미국 생활만 4년째인 박희정의 아버지 박승철씨는 올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올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 불거진 ‘불미스런 일’로 인해 외국 선수들이나 갤러리들의 눈초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부턴 딸의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엔 한국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하는 갤러리들의 태도가 조금 변했다. 모두 ‘그 일’ 때문이다. 이젠 부모들이 떠나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특히 나라의 이미지를 망치는 부모라면 더 더욱 이곳에서 빨리 떠나야 한다.”
박씨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만 바란다면 ‘바른생활’ 대신 ‘도둑질’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라며 현재 LPGA 일부 한국 아버지들의 ‘바짓바람’을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