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18일 추어탕으로 유명한 한 음식점. 조씨는 소주를 ‘애피타이저’ 삼아 가볍게 두 병을 해치우면서 ‘아시아의 물개’로 살아온 지난 45년간의 수영 인생을 담담히 토해냈다.
그는 2년 2개월 전에 사별한 아내를 회상할 때는 눈물을, 자신의 대를 잇고 있는 아들 성모군(19·수영 국가대표)을 이야기할 때는 기대에 찬 희망을 비치며 두 시간이 넘는 ‘취중토크’를 이리저리 요리했다.
조오련씨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와 ‘취중토크’를 하는 걸 ‘겁없는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실제로 소주를 한가득 따른 뒤 잔을 부딪치자 “여자분이 그렇게 용감하게 마셔도 되냐?”는 반응이 나올 만큼 그는 술에 관한 한 ‘빈틈’이 없어 보였다. 하긴 소주를 맥주잔에 따라 마셔야 직성이 풀릴 정도라니 처음부터 대작을 꿈꾸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샷’과 ‘잔 돌리기’로 그의 분위기에 맞춰나갔다.
살아온 세월만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최근 가장 화제를 모았던 한강 7백리길을 헤엄쳐 내려온 사연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2년 전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 이야기부터 꺼냈다.
“5일 동안 꼼짝 않고 술만 마신 적도 있었네. 아내의 빈자리가 그렇게 클 줄은 참말로 몰랐제. 희망도 없고 자포자기하는 맴으로 살아뿌렀어.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맞습디다. 그런디 작은아들 성모가 밟히더라고. 내 죽으면 어린 것이 어떻게 살까 싶었제. 맨날 술 먹고 자빠져 있는 아버지만 보여줬응께. 훌훌 털고 일어나서 한 짓이 방송 출연이었네. <뷰티풀 선데이>인가 뭔가 있었잖여. 그때부터 조금씩 날 다시 찾았당께.”
그가 한강 줄기를 헤엄쳐 종주하기로 한 데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얼굴, 이름만 빼놓고 아버지의 족적을 그대로 밟고 있는 아들 성모가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는 물론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아시아의 벽을 허물고 자신의 한을 풀어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작은 몸부림’이 그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51년생 토끼띠 동갑내기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토끼띠 남편을 둔 부인들이 내가 11일 동안 헤엄쳐 내려온 거 보고 남편을 좀 볶아댔을껴. 힘 좀 쓰라고. 그건 좀 미안허제”라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년 중국의 양쯔강 수계 3천km를 1백일 안에 주파하는 도전의 시험 무대이기도 했다.
▲ 조오련씨는 아내를 회상할 때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 ||
“스폰서를 약속했던 모 방송사에서 막판에 ‘파토’를 놓더라고. 일은 이미 벌여논 상태라 포기할 순 없고, 할 수 없이 은행을 찾아갔제. 조오련이란 이름을 걸고 3천만원 빌리기가 참으로 힘들더구먼잉.
아내 잃고 스포츠센터 문 닫고 한께 수중에 돈이 없습디다. 사정사정해서 빌린 돈 갖고 시작했응께 어떡허든 끝장을 봐뿌러야 했어.
근디 부대에서 발목을 잡더라고. 남방 철책선 바로 밑에서 출발하려니께 물 속 지뢰 땜시 안된다는 겨. 실랑이를 벌이다 부대에서 내건 조건이 수심이 낮다고 절대 바닥을 내딛지 말라는 거였제. 재미있는 게 발은 안내딛는디 가다본께 내 배가 바닥에 닿더라고.”
그 스스로 ‘연료통’과 ‘보호막’이라 부르는, 둥근 배를 ‘무기’로 셀 수 없이 손을 휘저으며 외롭게 물 속을 헤엄쳐 가는 동안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 둘만 셌는디? 하하. 아무래도 죽은 각시 생각이 가장 많이 났겄제. 가끔은 여자 살내음도 그립고 허요, 본능적으로. 내 뜻허고는 상관없이 선도 많이 봤소. 그런데 그게 잘 안됩디다. 내 마음이 아직 닫혀있는갑서. 아내 보내고 난께 내가 못해 준 것들이 너무 많이 생각나 뿔더라고.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한테 이렇게 얘기하제. 설거지와 사랑은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해뿌러야 한다고.”
그는 아내를 잃은 뒤 술로 탕진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술을 가득 채운 뒤의 다음날은 거북한 속으로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술을 한잔 마시면 비포장도로에서 아스팔트길을 달리는 것 마냥 상쾌함이 느껴졌다고. 비록 속은 ‘짚세기 신고 강강수월래 하는 것’처럼 뒤죽박죽이었어도 소주를 입에 털어넣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그의 음성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비록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도 50대 남자의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과 안타까움이 술기운과 함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한반도를 스쳐가는 바람결 같은 내 삶을 직접 쓰고 싶소. 그래서 국문과에 다시 진학하고 싶은디 그게 가능헌지 모르겄네. 글을 써도 입 크기, 눈 크기가 맞아야 하는 거 아니겄소. 어디다 먼저 대가리를 놔야 하고, 새끼 발가락은 어디다 놔야 하는지 모릉께. 인세 받으면 요트 타고 세상 구경이나 실컷 했음 싶은디 어찌 될랑가 모르제.”
그는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천7백54쪽에 달하는 성경책을 매일 한 쪽씩 쓰기 시작해서 지금은 1천6백50쪽까지 썼다고 한다. 모태신앙이긴 하지만 남다른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성경을 쓰다보면 어머니를 떠올릴 수가 있었기 때문에 더 더욱 성경 쓰기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마시겠다는 술이 두 병째를 넘어서자 그는 “뽑을 거 뽑았으면 이제 그만허고 밥이나 묵읍시다”고 권하면서 이런 멘트를 남겼다.
“난 재활용품이여. 재활용품이긴 해도 내가 이뤄놓은 삶을 같이 추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겄구먼. 조금 맛은 없겄제. 씨 뿌릴 때부터 같이 안 있었응께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