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응, 이승엽(왼쪽부터) | ||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는 인터뷰가 나간 뒤 기자들은 서재응의 아버지 서병관씨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를 상대로 한 아버지 서씨의 야구 강의 내용이 궁금했던 것.
“재응이한테 주로 하는 말이 ‘자신있게 던져라’다. 홈런을 맞더라도 자신있게 덤벼야 상대 선수가 우습게 보지 않을 거란 믿음에서다. 도망가지 말고 정면 승부를 걸라는 내용을 주로 강조하는데 재응이는 좋든 싫든 내색하는 법 없이 잘 받아들인다.”
그런 점에선 서씨가 아들에게 더 고마움을 느끼는 듯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도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아들의 마음 씀씀이가 진하게 와 닿았기 때문. 서재응과 형 재환씨 등 두 아들이 모두 야구선수인 덕에 지난 15년간 야구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서씨의 야구 지식은 전문가를 능가할 정도. 그렇다고 비선수 출신인 그가 기술적인 조언을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심리적인 것, 선수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경기 내용 등을 경기 중간중간 꼼꼼히 메모했다가 통화할 때 적절히 자극을 준단다.
“주위에선 10승을 이야기하는데 팔꿈치 부상을 떨치고 빅리그 복귀 후 8승만 해도 정말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평가는 내년으로 미뤄줬으면 좋겠다.”
서씨는 아들에게 다른 팀은 몰라도 오는 22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는 꼭 이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재응이가 몬트리올전에서 3전 전패를 했다. 앞으로는 그 팀을 만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내 소원이라고까지 말했다”고 설명했다.
▲ 서재응아버지 서병관, 이승엽 아버지 이춘광, 박지성 아버지 박성종, 이천수 아버지 이준만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
“조금만 잘한다고 칭찬받으면 오버액션하는 선수들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승엽이가 야구 시작할 때부터 인사 매너에 대해 강조했다. 프로 입단 전까지만 해도 승엽이한테 칭찬을 하지 않았다. 칭찬이 ‘약’ 보다는 ‘독’이 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칭찬해주고 싶어도 마음 속으로만 꾸욱 참았다.”
원래 이승엽의 결혼 시기는 27~28세가 되는 2003년경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학 1학년인 어린 아가씨가 며느리가 되겠다고 찾아와 한동안 고민과 갈등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고.
“결혼 초만 해도 이런저런 일로 며느리를 꾸짖기도 하고 며느리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들의 성공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결혼시키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산’ 하나를 넘으니 또 다른 ‘산’이 있었다.” 하지만 잘 참고 견뎌온 며느리가 이제는 대견스럽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천수의 아버지 이준만씨는 요즘 졸지에 ‘홀아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내가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갔기 때문. 원래 이씨도 아내와 함께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예기치 않은 수술을 받는 바람에 통원치료를 위해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
“천수가 워낙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라 항상 걱정이다. 가만히 있으면 욕은 안 먹을 텐데 너무 솔직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얼굴만 보면 잔소리를 하니 요즘엔 천수가 날 피한다. 스페인 가서도 전화한 적이 거의 없다.” 친구 같은 어머니와는 달리 싫은 소리를 달고 사는 아버지를 아들이 조금씩 피하는 것 같아 서운한 것만은 사실.
“나까지 아들 편일 수만은 없다. 아내가 스폰서라면 난 때론 욕도 하고 야단도 치며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다. 너무 자신만만한 이미지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천수가 그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씨는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고 있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예전 축구부 회비를 내지 못해 선수단 버스를 직접 운전하며 ‘몸으로 때웠던’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이천수, 박지성(왼쪽부터) | ||
지난 7월 4주간의 군사훈련과 피스컵대회를 마치고 네덜란드로 돌아가기 위해 출국 준비를 하는 박지성에게 아버지 박성종씨는 모교 감독께 안부전화를 드렸는지 다시 체크했다. 박지성이 고등학교·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 은사들께도 모두 전화를 드렸다고 하자 박씨는 그제서야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박씨가 아들한테 수시로 강조하는 말은 “축구선수 박지성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한테 절대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혼자 잘나서 지금의 박지성이 된 게 아니지 않은가. ‘난’ 선수보다는 ‘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전화를 드리라고 잔소리 좀 한다.”
박씨는 아들을 대신해 모교에 축구화를 기증한다든가 고아원을 방문하는 등 박지성을 대신해 여러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지성이 귀국할 때는 축구공을 쌓아놓고 사인을 해놓으라는 ‘숙제’를 내기도 한다. 박지성의 사인볼을 전해줬을 때 그들이 느끼는 기쁨을 직·간접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잔소리가 많아서 지성이가 날 어려워한다. 지성이가 어른이 됐을 때, 또 나처럼 아버지가 됐을 때쯤이면 내가 왜 그토록 잔소리를 했는지 이해할 것”이라고 말하는 박씨에게선 따뜻한 부정이 물씬 묻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