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한국과 일본은 매년 장소를 바꿔가며 한·일 정기전을 치렀다. 내가 2학년 때는 한국에서 대결을 했다. 일본은 고시엔대회 상위팀 선수 중에서 선발했고 한국 역시 전국대회 성적을 중심으로 선발했다. 그해 일본팀에는 우승팀 PL학원의 에이스 구와타와 4번타자 기요하라가 포함돼 있었는데 이 둘은 일본에서 ‘괴물’로 통하는 ‘고딩’이었다.
1차전은 동대문야구장에서 펼쳐졌다. 그런데 경기 전에 배팅연습을 하는 기요하라를 보고 모든 한국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볍게 몸을 푸는 훈련에서 글쎄 장외홈런을 ‘펑펑’ 터트리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최고의 파워를 뽐내는 우리들도 어쩌다 한 개씩 펜스를 넘길 정도인데 그 괴물은 여유 있게 야구장 밖으로 타구를 날려보내고 있었다.
또 에이스 구와타는 분명 공을 던졌는데도 공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한국의 1회 말 공격 선두타자는 부산고의 현남수. 구와타의 초구는 구속 154km짜리 스트라이크였다. 대사건은 다음 공에서 터졌다. 2구를 겨우(?) 받아친 현남수의 타구는 불쌍하게 투수 앞으로 굴러가는 땅볼. 그런데 벤치에 돌아온 현남수의 오른손이 점점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곧바로 현남수는 X-레이를 찍으러 병원에 갔다가 3회쯤 돼서 돌아왔는데 손등에 금이 가 깁스를 한 상태였다.
그때부터 타석에 들어가는 한국 선수들의 얼굴 표정은 ‘존경하는 구와타님이여, 제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였다. 1차전은 박동희가 호투를 했지만 구와타가 ‘자비를 베풀지 않아서’ 완봉패를 했다. 그해 한국은 1승2패로 졌고 구와타가 2승을 했다. 그런데 괴물타자 기요하라는 종합 8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오히려 나는 7타수 무안타로 기요하라보다 잘했다(?).
다음해는 일본에서 정기전을 치렀다. 두 괴물은 당연히 출전했고 또 다른 엄청난 투수가 나온다는 괴담이 돌았다. 그런데 실제로 1차전에 나온 투수는 156km짜리 광속구를 던져대는 ‘몰상식한’ 친구였다. 생김새도 내가 ‘마당쇠’라면 그는 ‘망나니’ 수준이었다. 1차전은 ‘망나니’의 위력과 생김새에 완전히 압도당한 나머지 9-0으로 완봉패.
2차전은 우리가 구와타를 박살내며 5-1로 신나게 앞서나가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노게임이 선언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날씨마저 ‘걔네 편’이었다. 다음날 치러진 2차전은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언더핸드 투수한테 배배 꼬여 9-2 패. 결국 일본한테 2전 2패를 했다. 두 ‘괴물’ 구와타와 기요하라는 고교 졸업 후 프로야구에 진출해서 천하를 호령했다.
야구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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