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선배’ 이만수(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코치)는 올 시즌 후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한 이승엽(26·삼성)에게 ‘미국에 오지 말라’는 당부 아닌 당부를 했다. 이승엽의 실력이 뒤떨어져서가 아니다. 한국의 ‘국민타자’ 이승엽의 이미지 때문이다. 일본의 이치로나 마쓰이를 떠올리며 미국행을 시도했다가는 낙심과 절망감을 곱씹을 수도 있는 곳이 메이저리그라는 것.
<일요신문>에선 현재 메이저리그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에이전트, 특파원, 야구인 출신들에게 이승엽의 메이저리그행에 대한 특별 조언을 부탁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보는 이승엽에 대한 평가와 시각은 국내 매스컴이나 야구팬들의 바람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본다.
이승엽의 몸값으로 연봉 3백만달러를 제시한 팀이 있다는 한 스포츠신문의 보도에 최희섭의 에이전트인 이치훈씨는 메이저리그 현실상 그렇게 많은 액수가 나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지금은 탬퍼링(Tampering·부정교섭) 기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승엽의 신분이 FA라 해도 시즌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몸값을 먼저 흘리는 팀은 단 한군데도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포츠조선>의 민훈기 특파원도 연봉 3백만달러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메이저리그의 현실상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높은 연봉을 제시할 팀은 거의 없다는 것. 그는 “한국의 ‘홈런왕’이란 타이틀을 갖고 연봉을 생각하기보단 메이저리그 첫 해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곳엔 이승엽보다 훨씬 싼값에 데려와 즉시 전력감으로 쓸 수 있는 남미 출신의 선수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에서 친 홈런이 이곳에선 안타나 2루타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괴물’로 불렸던 마쓰이도 처음에는 홈런은 고사하고 2루타나 플라이 아웃이 대부분이었다. 홈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도전한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이치훈씨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스피드보다 현란한 ‘무브먼트’에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150∼160km대의 속도도 타자로선 ‘속수무책’이지만 직구로 뻗어왔다가 바로 눈앞에서 뚝 떨어지는 변화구를 상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이만수 코치는 이승엽의 배트 타이밍이 느린 것을 지적하면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이 전반적으로 무거운 편이다. 그래서 빠른 스윙을 하지 않으면 타구가 멀리 안 나간다. 방망이를 갖다 맞추는 스타일은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애틀 매리너스 스카우트로 백차승과 추신수를 이끌었던 전 OB(현 두산) 감독 이재우씨는 “한국에서 3할 타자면 미국에서도 3할 치는 타자”라면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이 모두 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물론 한국의 투수들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실력이 약간 업그레이드됐을 뿐이다. 이승엽 정도의 타격 감각이라면 처음 적응기를 거친 후에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민훈기 특파원은 1루수 출신의 이승엽의 포지션 문제에 대해 이런 얘기를 덧붙인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극동 담당자가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승엽의 플레이를 직접 본 후 한 말이다. 타력은 굉장히 좋지만 1루수 치고는 약한 편이라 외야수 전향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메이저리그에는 ‘거포’들이 대부분 1루수를 맡고 있어 이승엽 정도의 타력으론 다른 1루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크지 않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이재우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일부러 포지션을 변경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 즉 이승엽을 믿고 기회를 줄 수 있는 팀을 골라낸다면 굳이 1루를 버리지 않아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이승엽과 심정수가 동시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할 경우 한 선수는 반드시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FA 신분이 되는 이승엽이 먼저 진출한 뒤 심정수가 다음 시즌 FA 자격으로 메이저리그 문을 노크하는 게 ‘연속 홈런’을 날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 그는 “몸값을 따진다면 심정수보다 이승엽이 훨씬 유리하다. 1년 더 기다렸다가 이승엽의 바통을 이어받아 심정수가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개인적인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