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단 야구팀. 사진제공=인천시.
[일요신문]2002 월드컵 4강,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우승 등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축구와 야구가 인천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인천은 개항의 도시로 수많은 문물이 도입된 곳이다. 그 중 축구와 야구도 인천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 영국 군함 플라잉 피쉬(Flying Fish)호가 제물포 입항 시 수병들이 잠시 상륙해 자기들끼리 축구 시합을 벌인 게 한국 땅에서의 최초의 경기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날 축구 경기에 사용했던 공을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주고 갔는데 이 공이 한국에 전해진 최초의 축구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플라잉 피쉬호 허스킨 함장이 인천부사에게 보낸 공문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근대 축구가 정식 보급된 1904년 보다 앞선 1901년에 강화도에 근대 축구팀이 존재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1901년 3월 21일 시드니 J. 파커가 제물포에서 영국 성공회 발행 잡지 ‘모닝 컴(Morning Calm)’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강화학당 축구팀이 G.A. 브라이들 목사에게 수년간 훈련을 받았으며 선수들의 기량도 좋다고 쓰여 있어 인천이 우리나라 축구 도입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야구 역시 인천이 국내 야구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야구의 기원은 1904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Philip. L. Gilet)가 야구 장비를 들여와 황성기독청년회(YMCA의 전신) 회원들에게 타구(打球) 또는 격구(擊球)라는 이름으로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인천영어야학회(1895~1904, 인천고등학교의 전신)에 재학했던 후지야마 후지후사의 1899년 2월 3일자 일기에 “베이스볼이란 서양공치기를 시작하고 5시경에 돌아와서 목욕탕에 갔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 당시에 인천에 야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야구 도입원년을 정의하기 위한 학계의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충분한 근거자료가 없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천이 한국 야구 시발지로서 갖는 위상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기스포츠인 축구와 야구가 인천에서 시작해 우리나라 전역에 보급됐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경기를 즐기는 것도 또 하나의 흥밋거리이자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식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