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주인공 감사용씨(46)는 삼미특수강에서 직장인 야구를 하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때 삼미 슈퍼스타스로 옮긴 후 패전 처리만을 도맡았던 무명 투수 출신. 영화 제작 사실이 알려진 후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피했던 감씨를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일 창원에서 만났다.
창원시 대방동 D마트에서 관리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어렵사리 기자와의 인터뷰를 승낙해놓고도 계속 갈등을 느꼈다고 말할 만큼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다. 프로생활 5년 동안 1승 16패의 기록을 남겼던 감씨로부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마운드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화사와 계약을 맺기 전까지 가족들한테조차 알리지 않았어요. 왠지 실감도 안 나고 가족들도 믿지 못할 것 같아서죠. 저에 관한 영화가 제작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하필이면 왜 감사용이냐’는 얘기였어요. 스타들도 많은데 무명 선수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던 거죠.”
감씨는 오랜 기간 꾸준히 설득 작업을 펴왔던 김종현 감독의 노력과 인내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삼미 슈퍼스타스 ‘패전처리 전문’ 투수의 인생 역정에 관심을 가진 김 감독이 수소문 끝에 창원의 감씨를 처음 찾아온 시기가 6년여 전. 그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김 감독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감씨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었지만 수년간의 ‘시간차 공격’ 탓에 결국 김 감독한테 항복하고 말았다고 한다.
진해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감씨는 군대생활 33개월을 제외하곤 글러브와 공을 분신처럼 여기고 살았다. 군 제대 후 초·중·고 시절 내내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조경래씨와 함께 창원의 삼미특수강에 입사한 후 직장인 야구팀에서 뛰며 창원 공단 내의 22개 야구팀을 모조리 평정하는 등 삼미특수강 야구부의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82년 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인천 삼미슈퍼스타스 원년 멤버로 ‘파견 근무’를 시작한 감씨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고전하다가 결국 86년 김성근 감독이 있던 OB로 자청해서 팀을 옮겨갔다. “감사용하면 패전 처리 전문 투수라고 알려졌는데 사실 누가 패전을 떠맡고 싶었겠어요. 당시 분위기가 선발투수가 이기고 있으면 불펜에서 몸 풀고 있는 투수가 보였지만 선발이 무너지면 다른 투수들이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어요. 만만한 게 저였죠. 패전을 한두 번 맡다보니까 나중엔 아예 패전 전문으로 낙인이 찍히더라고요. 설움도 많았습니다. 82년 80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제가 등판한 횟수가 1백33과 2/3이닝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지금처럼 선발, 중간, 마무리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그 시절, 꼴찌팀의 숙명을 안고 살았던 원년에 감씨는 어느 투수보다도 잦은 등판과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하며 설움의 시절을 보내야 했다. 체력적인 부담에다 패전 전담투수라는 멍에는 감씨의 야구 생활을 버겁게만 했다. 결국 OB로 트레이드된 지 1년 만에 현역 생활을 정리하고 마산으로 내려온 감씨는 4년 동안 고깃집을 운영해서 번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야구 불모지인 경남 지역의 야구 부흥을 위해 초·중학교 코치와 감독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주변 상황으로 인해 고등학교 감독으론 올라가 보지 못했다고.
“야구도 힘들게 했지만 무방비 상태로 사회인이 되고 보니까 더 험하고 괴로운 일들이 많았어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래도 절 붙잡아 준 건 야구에 대한 미련이었습니다. 선수로는 별 볼 일이 없었지만 지도자로서 꼭 성공하고 싶었거든요. 아직도 그 꿈은 버리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저한테 좋은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믿고 지금도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은퇴 후 삼미 시절 함께 운동했던 동료 선후배들과 연락을 끊은 채 살아왔던 감씨는 이번 영화 제작을 통해 당시의 멤버들에게 새로운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보면 당시 활동했던 박철순, 김우열, 김호인 등 야구 선수들이 대거 등장해요. 모두 실명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초상권이나 이름 사용 동의서를 받기 위해 제작사 직원이 일일이 그들을 만나고 다녔나봐요. 모두가 동의서에 사인을 해줬다고 해요. 영화가 잘되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름 사용을 허락해준 분들에게 어떤 형식이로든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사용씨의 역은 영화배우 이범수가 맡기로 했다. 감씨는 “김종환 감독한테 얘길 들으니까 이범수씨 키가 170cm라고 해요. 제 키가 171cm이거든요. 영화가 크랭크인되면 직접 만날 예정입니다. 연기를 잘하는 분이라고 해서 좀 안심이 돼요.”
벌써부터 감씨는 영화의 흥행 여부가 걱정인 모양이다. 최근엔 절을 찾아가 불공을 드렸을 만큼 영화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계약금을 얼마나 받았느냐는 다소 ‘냄새나는’ 질문을 던졌다.
“영화가 잘되면 어느 정도의 보너스를 받기로만 했어요. 그 돈은 모교인 마고(마산고등학교) 야구부에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