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단을 보자. 이건 정말 햇병아리 부대다. 주장 이창호 9단(28세)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모두 약관이다. 4명 가운데 여류 박지은양이 나이가 제일 많은데, 만 20세다. 18세 원성진군이 단은 제일 높은데 5단이다. 19세 홍민표군이 3단이고, 17세 허영호군은 2단이다. 이래서 평균 연령 21.4세, 단 평균은 4.6단이다. 한국 대표 선수단 역대 최연소·최저단 기록이다.
28세의 이창호 9단이 큰형처럼 보인다. 사실은 이 9단도 아직 나이로는 중간 형이 안 된다. 아무튼 이번 한국 선수단은 전쟁터에 출전한 것이 아니라 중간 형이 학교에 갓 입학한 아우들을 데리고 나들이라도 나온 모습이다.
위빈 9단(36) 저우허양 9단(27) 왕레이 8단(26) 후야오위 7단(21) 구리 7단(20)으로 이루어진 중국 선수단은 평균 연령 26세에 평균 단은 8단이다.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일본은 나이나 단이나 훨씬 많고 높다. 린하이펑 9단이 61세, 가토 마사오 9단(단장 겸 선수)이 56세,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51세, 류시훈 9단이 32세, 장쉬 9단이 23세며 평균 연령 44.6세다.
이래서 ‘도미솔 대회’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고, 한국팀이 ‘10대(10大이면서 10代?)가수쇼’라면 중국은 ‘윤도현의 러브레터’, 일본은 ‘가요무대’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10대가수쇼도 특이한 선수구성이지만, 일본팀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성적 여하에 따라 “역시 역전의 노장들답다. 관록이란 무서운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선수의 과반수를 골동품팀으로 구성할 때부터 이길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비난을 들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이기나 지나 일단 명분은 선점하고 있어 밑져야 본전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대회에서 너무 많이 우승을 했다. 국제대결이 시작된 이후 몇 차례까지는 우승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열 번이 넘고 스무 번이 넘자 우승 자체가 시들해진 것.
나아가 우리만 너무 독식을 하는 것이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 바람직하기만 한 것이냐는 배부른 자성도 대두되었다. 또, 한국에는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이세돌 등 네 사람밖에 없느냐, 중견이나 신진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백년대계론도 이미 공감대가 넓게 이루어져 있는 상황이다.
진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이 없는 것. 게다가 꼭 진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부담이 없으니 뜻밖에 좋은 성적을 올릴 수도 있는 것. 한국인의 의지를 세계에 과시했던 ‘철의 산악인’ 허영호와 동명이인인 허영호 2단과 ‘리틀 흑기사’라는 별명의 신예강완 홍민표 3단이 각각 일본의 장쉬 9단과 중국의 왕레이에게 패해 한국팀은 초반 2연패.
출발은 썩 좋지 않지만, 남자 프로들도 맞상대하기를 꺼리는 박지은 4단, 주로 국제무대를 통해 기량을 닦으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원성진 5단이 뒤를 받치고 있는 데다가, 맨 뒤에는 세계 최강·불패의 수문장·신의 손 이창호 9단이 있어, 중국 일본팀에서 오히려 싸움은 이제부터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 [1도] | ||
농심배는 제한시간 각 1시간에, 60초 초읽기 1회의 준속기전이다.
10월25일, 중국의 2번타자(4장) 왕레이 8단과 한국의 4장 홍민표 3단의 대국, 홍 3단이 백을 들었다. 홍 3단은 신예 중에서도 색다른 바둑 스타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흑1부터 백6까지, 평행형 흉내바둑이다, 흉내바둑은 대각선 흉내바둑이 보통이다. 좌상귀 흑7 걸침에 대해 백8로 받으면서 흉내가 풀렸다.
우하귀 흑9의 협공을 외면하고 좌상귀 백10 붙여 흑11과 교환한 다음 12로 갈라침 겸 협공한 것은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욕적 구상이고 이하 백16까지도 하자 없는 진행이었는데, 흑17 때 좌하귀로 돌아가 백18 이하로 움직인 것이 과잉 의욕, 백은 여기서 초반에 대세를 그르치게 된다.
▲ [2도], [3도] | ||
문제의 장면을 따로 떼어 본 것. 흑0(17) 때 백1쪽에서 대응한 것이 의문이었다는 것이 검토실의 중론이었다. 백1로 둔 이상 흑2 붙임에는 백3 젖혀야 하고 흑4에는 흐름상 백5로 한 번 더 밀어야 하는데, 흑6으로 두점머리를 얻어맞은 것이 아프고, 기세를 살려 백7로 끊어 일전불사를 외쳤으나 흑8로 다시 뿌리쪽이 끊겨서는 이후 백에게 좋은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
[3도]
백1 정도가 무난한 응수였다. 흑2·4는 일종의 기대기인데, 겁날 것이 없다. 백3·5로 받아 주어도 흑에게 뾰족한 후속수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흑A면 백도 B로 다 받아 준다. 흑은 좌변 백 석 점을 공략하고 싶겠지만, 백은 C로 붙이며 눈모양을 풍부하게 만드는 수, D로 급소를 치는 수, E부터 흑의 차단을 노리는 수 등 풍부한 타개책이 있는 것이다.
다시 1도로 돌아가 ― 홍 3단은 백48부터 좌상 흑에 덤벼들며 형세만회를 노렸으나 흑51부터 69까지 왕 8단의 수습과 대응이 멋졌다. 백84까지 바꿔치기인데, 자체로 흑이 더 좋은 데다가 선수도 흑에게 돌아가 85로 하변을, 87로 우상귀를 거푸 지키게 되어서는 백이 어렵게 되었다. 179수에서 백이 돌을 거두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