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주 | ||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이나 신발 등도 예외는 아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신발과 유니폼도 알고 보면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과학의 결과물이다. 이제 스포츠도 맞춤형 시대다. 곳곳에 과학을 담고 있는 스포츠 제품들의 비밀을 들여다봤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목수는 연장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앞으로 이 표현이 스포츠에서는 적용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엇비슷한 기량이라면 어떤 유니폼이나 신발을 신었느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 지난 9월28일 베를린마라톤에서 폴 터갓(케냐)이 2시간4분55초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을 때에도 그가 신고 있던 마라톤화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당시 폴 터갓이 신었던 신발은 나이키가 최근 개발한 ‘에어줌 카타나2’(Air Zoom Katana2). 폴 터갓은 대회를 위해 자신의 발 특성을 고려해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신었다. 반응력이 뛰어나 주로 단거리 육상 경기에 사용되던 ‘줌 에어’ 기능을 장거리 속도 전쟁에서도 유용하도록 접목시킨 게 특징. 또한 에너지의 전달 경로인 엄지발가락과 뒤꿈치 부분에는 미끄럼 방지 기능이 탁월한 특수 와플 DSP소재를 사용해, 노면 상태에 상관없이 러너의 전진을 도와주는 뛰어난 견지력(방향성 등을 유지하는 힘)을 자랑한다. 이처럼 정상권에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맞춤형 신발을 신는 추세다.
오는 11월24일 나고야하프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이봉주(삼성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시안게임 2연패에 빛나는 이봉주의 신발은 아식스에서 특수 제작한 ‘마라톤 솔티-리’(Marathon Sortie-Lee). 세계적인 운동 선수들의 특수 주문화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일본의 미무라 히토시가 1년여의 기간을 거쳐 완성했다.
이 신발에는 통기성을 높이고 온도의 상승을 막기 위해 ‘2중 럿셀 메쉬’라는 갑피소재가 사용됐고 내부엔 땀을 흡수한 후 바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냉각 소재의 원단이 들어갔다. 보통 마라톤 선수들이 달릴 때 신발 내부의 온도가 40℃ 이상으로 상승되지만 이 소재는 38℃ 정도로 적정 온도가 유지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 또한 경기중 물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면과 폴리에스테르가 적절하게 혼합된 완충성이 뛰어난 특수소재가 깔창으로 사용됐다.
이봉주는 “지금 신발은 1백45g으로 맨발로 뛰는 기분이다. 무게도 무게지만 (나의) 족형을 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착용감이 상당히 좋다. 마라토너에게 편안한 신발은 생명과 같다”며 대만족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이봉주의 신발 가격은 과연 얼마나 될까? 순수 제작비만 9천만원이며 연구개발비까지 포함하면 2억원이 조금 넘는다고. 코오롱스포츠 연구개발실의 김대철 과장은 “신발의 경우 선수가 일정 기간 착화하고 나면 그것을 수거해 분해해서 굴곡, 접착 내열 등 수많은 사항을 점검해 이상적인 제품의 시안을 마련한다”며 연구개발 기간이 최소 1년은 걸린다고 설명했다.
0.01초에서 승부가 갈리는 수영이나 육상에서도 첨단 유니폼이 등장하고 있다. 2000시드니올림픽에서 선보인 ‘패스트 스킨’이라는 첨단 신소재가 사용된 전신수영복이 좋은 예. 상어 피부를 응용했다는 V자 모양의 홈들이 미세한 물방울마저 흡수되지 않도록 흘려보내는 등 물의 저항을 최대한 줄인 게 특징이다. 당시 이 유니폼을 입었던 이언 서프(호주)는 자유형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첨단 유니폼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다만 발목까지 덮는 전신수영복을 착용하기 위해서는 10분 가까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4명의 도우미가 필요하다는 게 흠(?).
국가대표팀 수영복을 제작하고 있는 아레나의 이현실 디자인실장은 “남자선수의 경우 손목, 발목, 무릎, 어깨까지 오는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공통점은 물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며 “고밀도 소재를 사용해 탄성 회복률이 뛰어나고 밀착감이 좋으며, 저항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각국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에도 ‘땀 배출’과 ‘피로도 감소’라는 기본 컨셉에 첨단기술이 접목돼 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입는 두겹으로 된 나이키 유니폼의 안감은 머리카락 두께의 50분의 1∼100분의 1에 불과한 원단에 깨알 같은 구멍이 뚫린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땀을 피부로부터 최대한 빨리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이제 스포츠는 과학이 만들어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베트남과 오만 전에서 골문 밖으로 슛을 남발했던 우리 축구 대표팀에게 절실한 ‘정확도 100%’짜리 축구화는 혹시 만들 수 없는 걸까.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