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엘류 감독 | ||
오만에 파견된 대표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들이 ‘김일성 사망 이후 최고의 쇼킹한 뉴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사실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26일 귀국과 함께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 ‘출두’하는 쿠엘류 감독의 운명을 벼랑 끝에 내몬 베트남과 오만전. 아시아연맹(AFC)의 소식지에 ‘콧대 높은 한국, 베트남에 지다’라는 헤드라인이 뜰 만큼 한국 축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망신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 대표팀이 생활했던 오만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대표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적해본다.
“시합 전날까지만 해도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훈련 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고 베트남 선수들이 골에어리어에 밀집된 상태에서 우리 선수들한테 이단 옆차기를 하는 등의 몸싸움을 벌이며 거친 수비로 우리 선수들의 신경을 자극한 것이 빌미가 되고 말았다.”
대표팀의 최강희 코치는 0-0으로 전반전이 끝날 때만 해도 한국 선수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팀의 슛 찬스가 헛발질과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 번번이 무위로 끝나자 베트남이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 놓고 골을 성공시키더라는 것. 당시 벤치 분위기는 마치 뭐에 홀린 듯한 ‘코마’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오만전은 베스트 멤버를 모두 투입하고 총력전을 펼친 덕분에 경기 시작 60분까지는 게임을 잘 풀어갔다. 후반전 한국이 첫골을 넣을 때만 해도 승기를 잡은 듯했는데 오만의 페널티 에어리어 지역 안에서 상대 선수가 김대의의 발을 고의로 걸어 넘어뜨렸는데 심판이 페널티킥을 불지 않았던 것이 ‘비극’의 사단이 됐다. 선수들과 ‘벤치’가 주심에게 거칠게 어필하는 동안 경기는 진행됐고 한국팀 선수들이 ‘어리버리’하는 사이에 오만 선수들이 적극 공격에 가담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한다.
“이운재가 골문을 비우고 앞으로 뛰어나왔고 김남일의 패스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대의 골문 앞으로 흐르자 오만 선수가 골키퍼도 없는 골문 안으로 거저 주운 골을 집어넣었다. 그 골을 먹고 나니까 선수들이 고꾸라졌다. 4분 만에 역전골을 먹은 것도 밸런스가 깨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혼수상태에서 오만 선수의 일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 지난 21일 오만에서 벌어진 아시안컵대회 예선에서 김정겸 선수가 오만팀 공격수를 막고 있다. AFP | ||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쿠엘류 감독에 대해 조심스러우면서도 강한 어조로 그동안의 느낌을 정리했다.
“쿠엘류 감독은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유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한곳으로 이끌어가질 못한다. 쿠엘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 색깔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더욱 큰 문제는 쿠엘류 감독이 한국 코치들을 조언자가 아닌 ‘경쟁자’로 본다는 것. 감독이 전권을 행사해 코치들은 감독의 지시대로 따르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 내용이다.
베트남전이 끝난 뒤 쿠엘류 감독과 최주영 물리치료사와의 드러나지 않았던 언쟁 한 토막. 쿠엘류 감독이 최주영 닥터를 불러 경기 전날과 경기 당일 선수들한테 왜 마사지를 해주었냐고 물었다. 최 닥터는 “그동안 항상 해왔던 일인데 왜 이제 와서 문제제기를 하느냐”고 따졌고 쿠엘류 감독은 “유럽에선 경기 전날과 당일에는 선수들의 마사지를 금한다”며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당시 그 현장을 지켜본 또다른 대표팀 관계자는 “선수들이 경기에서 진 원인을 마사지에서 찾으려고 하는 감독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며 어이없어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그는 이런 절망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경기에서 진 것은 문제가 안된다. 심각한 것은 설령 네팔한테 졌다고 해도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대표팀에선 그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계란을 맞든 돌멩이를 맞든 피해가지 말고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한국에) 가야하겠지만 솔직히 앞이 안 보인다. 그래서 절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