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아’들의 독종플레이 김태영, 유상철, 이을용 (사진 왼쪽부터)이 ‘오만쇼크’ 후 후배들에겐 예전같은 절박한 플레이를 보기 힘들다며 고언했다. | ||
오만에서 귀국한 이후 처음으로 지난 3일 축구협회에서 미팅을 가진 쿠엘류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쿠엘류호’의 순항을 위해 갖가지 방안을 강구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는 알 수 없는 상황.
<일요신문>은 오만전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회피했던 당시의 대표팀 선수들 중 이른바 ‘월드컵 멤버’였던 선수들과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그 중에서 골키퍼 이운재는 “무슨 말을 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인터뷰를 사양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월드컵을 통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치렀다는 ‘월드컵 멤버’들이 보는 대표팀의 문제점과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아봤다.
오만에서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김태영(전남)은 처음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꺼리다가 후배들에 대한 ‘섭섭함’으로 말문을 열었다.
“요즘 선수들은 태극마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국민의 대표로 뛰는 만큼 약팀이든 강팀이든 간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오만에서는 그런 부분이 간과된 것 같아 솔직히 서운했다.”
김태영은 개인적으로도 베트남전과 오만전에서의 패배로 쇼크 상태에 다다랐을 정도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토로했다. 게임 이후에는 밥맛을 잃을 만큼 분하고 억울한 심정이 돼 다음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고. 그러나 나이 어린 선수들한테서 자신과 같은 북받치는 감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패배에 대한 ‘억울함’이 없었다는 것.
이에 대해 평소 과묵하기로 소문난 이을용(안양)도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 후배들은 대표팀을 잠시 들렀다 가는 ‘간이역’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해외파 합류 후 자신들의 거취가 불투명하다는 부분에선 이해가 간다. 하지만 미리 포기하고 안이하게 행동하기보다 그 틈에서 끝까지 생존하려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제2의 홍명보’로 불리며 향후 대표팀에서 기둥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J리그의 유상철(요코하마)도 역시 후배들이 태극마크를 가볍게 생각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94년 미국월드컵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고 이를 악물고 연습했다. 그러다 막판 최종 선발 명단에 내 이름이 빠진 사실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월드컵 출신의 멤버들과 벽을 만들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뛰어넘으려는 어떤 간절함과 절박함이 필요하다.”
한편 유상철은 쿠엘류 감독이 겪는 시련에 대해 감독과 선수들 모두 서로에 대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짧은 기간 동안 봐온 쿠엘류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를 흑백논리로 평가해서 말할 순 없다.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라며 히딩크 감독을 기다려줬듯이 쿠엘류 감독한테도 더 많은 시간과 기회, 그리고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영은 “쿠엘류 감독이 좀 더 강압적인 방법으로 선수단을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금까지의 자유스런 훈련 분위기도 좋지만 선수들간의 경쟁 관계를 형성해 정신력을 집중시키고 목표에 대한 욕구와 의지를 강하게 표출할 수 있게끔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홍명보와 황선홍의 공백으로 인해 이전보다 대표팀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을용은 “지금 당장은 이런저런 비판들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던져주겠지만 어차피 한 번쯤은 터질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독약’을 ‘보약’으로 여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이을용은 오만전 이후 자신의 이름 석자가 그토록 한심하고 무능해 보였던 적이 없었다며 ‘월드컵 멤버’들은 ‘비월드컵 멤버’들을 껴안는 자세가, ‘비월드컵 멤버’들은 ‘월드컵 멤버’들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넘고 일어서려는 오기와 근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