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본업에 충실하려는 기자와 때론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선수가 만날 때는 분명 입장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타플레이어들에게는 한두 가지 이상의 씁쓰레한 인터뷰의 추억이 있게 마련. 선수들이 털어놓는 인터뷰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 (왼쪽부터) 정수근.이숭용.서정원.송진우 | ||
지금은 선수를 대하는 기자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현재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이 신인 선수일 때만 해도 인터뷰와 관련해서 황당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방적으로 친한(?) 척하며 반말을 걸어올 때. 생면부지의 ‘젊은’ 기자든 나이가 조금 있는 기자들이든 예외가 없었단다.
정수근(두산 베어스)은 아직도 ‘야∼, 수근아∼’로 시작되던 인터뷰의 황당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선수를 배려하는 기자들의 매너가 많이 좋아졌죠. 하지만 초면이라 기자인지 관중인지 알 수도 없는데 그냥 ‘수근아∼’하고 부르고는 인터뷰가 시작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구요.”
김도훈(성남 일화)은 ‘차라리 나이라도 많아 보이는 기자가 그러면 억울(?)하지나 않겠다’며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분명히 연배가 어리거나 비슷해 보이는데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자리에서 ‘쯩 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할 때가 몇 번 있었죠.”
◆저에 대한 질문을 좀 해 주세요, 네!
선수들은 인터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험’을 갖고 있다. 선수들이 답변을 잘못 이끌어내서가 아니다. 기자들이 다른 선수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돌려서’ 물어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숭용(현대 유니콘스)은 “처음에는 저에 대한 질문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질문 두세 개가 지나면서부터 자꾸 다른 선수 이야기만 하게 되죠(웃음). ‘오호라, 내가 타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어요”라며 기자들의 애로사항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야구 외적인 질문으로 끈질기게 물고늘어질 때에는 솔직히 귀찮은 감정도 드는 게 사실이라고. “저 같은 경우는 지금 노총각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 ‘여자 친구 있느냐’ ‘언제 결혼할 거냐’와 같은 단골 질문들이 심심하면 나오는데, 야구 선수한테 야구 관련 질문보다 다른 사생활에 더 관심을 보일 때에는 부담스럽기도 하죠.”
스타 플레이어인 서정원(수원 삼성)도 ‘대타’로 인터뷰한 경험을 웃으며 털어놓았다. “껄끄러운 질문을 직접 그 선수에게 하기 어려운 건 이해를 하는데 사실 제3자를 거쳐 기사를 쓰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죠. 좋은 일이면 뭐라고 말해도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선수들끼리도 다 아는 사이인데 곤란할 때도 있어요.”
◆뻔한 질문에 무엇으로 답하리
선수들은 시합이 끝나고 나면 경기장에서 즉석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하고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형식적인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때 말 그대로 형식적인 ‘뻔∼한’ 질문이 나온다는 것.
투수 손민한(롯데 자이언츠)은 경기 직후 나오는 질문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구질이 좋았느냐, 어떤 선수가 어려웠느냐, 오늘 승부구는 뭐였느냐’와 같은 질문은 빠지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 기분이 좋은 날에는 먼저 기자실에 들러 ‘오늘 구질은 뭐였고 승부구는 뭐였고 누구와 대결할 때가 승부처였다’느니 하는 답을 보도자료(?)처럼 말로 먼저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럴 땐 오히려 기자들이 당황해 한다니깐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아요. 가끔 결과가 안 좋은 날에 ‘왜 결과가 안 좋았냐’ ‘왜 그렇게 못 던졌느냐’라고 물으면 대체 뭐라고 답한답니까. 선수도 사람인데 말입니다(웃음).”
◆질문이 아니라 가르침이죠
선수들도 베테랑 기자들의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넘어간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여기서 ‘오버’하게 되면 십수 년을 야구만 한 선수들 앞에서 ‘질문자’가 아닌 ‘감독’ 내지 ‘코치’로 변신하는 묘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정수근(두산)은 기자들에게 혼난(?) 적도 많다고 했다.
“오늘 시합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조금 지나다 보면 ‘거기서 그렇게 치는 게 아니었는데’라든지 ‘수비를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와 같은 말을 하면서 선수를 가르쳐요.”
이런 가르침(?)에는 베테랑 선수들도 예외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송진우(한화 이글스)는 프로가 실력과 성적 위주인 것은 인정하지만 부진할 때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 중에 ‘얄미운’ 것도 있다고 말했다.
“시합을 망친 날 구질이나 컨디션을 묻는 질문은 이해가 가죠. 그런데 ‘이제 나이 때문이 아니냐’ ‘체력이 바닥난 것 같은데’처럼 속을 뒤집어 놓는 경우도 간혹 있다니까요.”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