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대회 운영팀은 새로 연구개발한 방식으로 대회를 진행, 참가국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새로운 한국식 진행룰은 리그나 토너먼트는 물론 아니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스위스 방식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국내외 각종 프로·아마 대회를 통틀어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는 방식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개국은 모두 5번의 대국을 한다. 대국 때마다 추첨으로 상대가 정해진다. 같은 나라와 중복 대국은 안 된다. → 12개 나라에서 5개 나라와만 대국하면 되기 때문에, 한·중·일 같은 강국이 아니더라도, 아무튼 자기들보다 약한 상대만 만나는 행운이 따른다면, 우승도 가능하다.
예컨대 한·중·일이 한 번씩 만나 물고 물린 끝에 4승1패를 기록했는데, 싱가포르가 다른 동남아 국가들하고만 대국하게 되어 5연승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동률인 경우에는, 선수 3명의 개인적 승수를 합해 비교한다. 승수도 같으면 선수 3명의 나이를 합해 많은 쪽이 이긴다. → 재미있는 조항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바둑이 10대, 20대 청소년들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추세에 반기를 든 것…^^.
실력이 같은 수준이면 나이가 어린 쪽이 유리하게 마련. 그렇다면 혜택은 나이가 많은 쪽에게 주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나이가 같다면? 생년 다음에 월일이 있으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정도만으로도 가히 파천황. 거기에 더 재미있는 조항이 또 있었다. 이 대회는 단체전이지만, 개인별 성적을 집계해 개인전 시상도 하는데…
▲개인별 성적이 같은 경우에는, 팀 성적이 나쁜 쪽 선수가 이기는 것. → 기존 방식의 대회라면, 단체전과 개인전이 병행될 경우, 보통은 단체전 성적 우수 팀이 개인전 입상도 휩쓸게 마련이다. 거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예컨대 단체전 4등을 한 대만의 A선수와, 단체전 10등을 한 필리핀의 B선수가 똑같이 5연승 최고성적이라면, 개인전 우승은 단체전 10등의 필리핀 B선수에게 돌아가는 것. 하위 팀 선수에게도 개인전 입상의 기회를 열어 주자, 아니, 더 나아가 프리미엄을 주자는 발상이다.
이 조항의 부수 효과 → 단체전에 참가한 선수들은 내가 못 두어 지면 다른 동료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부담을 갖게 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그런 부담에서 거의 해방이 되었다. 내가 잘 두면 단체전에 기여하는 것이고, 지면 옆 동료의 개인전 입상 도전에 일조를 하는 것이므로.
요컨대 한국식 아마추어 대회 진행 룰의 특징·골자는 실력이 약한 사람, 실력이 약한 팀도 끝까지 대회를 즐기게 하자는 것. 기회를 만들어 줌으로써 포기하게 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투지와 의욕을 심어 주자는 것.
최대 수혜국은, 애초 10위 이하일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던 필리핀. 용케 대진추첨에서 강국을 피해간 끝에 당당 5위에 입상, 환호성이 그치지 않았다. 단장은 대국장에서 바로 필리핀 바둑협회에 전화를 걸어 ‘서울대첩’을 알렸고, 또한 이 소식을 듣고 폐막식에는 주한 필리핀 대사까지 직접 참석, 필리핀의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토록 하겠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회 홍일점 한국 강나연과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혔던 중국 리다이춘(李大春)의 대결. 강 선수가 흑이다. 초반은 리 선수가 방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진행. 흑61까지 상변에 일당백의 큰 집이 굳어져서는 일찌감치 흑의 낙승이 예견되는 국면이었는데….
[2도-화근]
백1·3 때 흑4로 몬 것은 기세. 백5 되단수칠 때 흑6으로 때린 것도 당연. 여기서 백7로 몬 것도 백으로서는, 일단은 기세인데 흑8로 끊어 맞받아친 것이 ‘오버’였다. 패싸움을 불사하겠다는 것. 그러나 팻감을 계산하고 결행했어야 했다.
[3도-허망한 역전]
백1로 먼저 때리는 패. 흑2는 악수 팻감. 백3으로 때리게 되어, A로 껴붙이는 맛이 생겼다. 백은 5로 잇는 여유도 있다. 이제 와서 달리 둘 수는 없으므로 흑6으로 다시 끊었지만 팻감 부족임이 드러나고 있다. 흑8·10으로 우상귀를 잡은 것이 좌변 손실에 비해 턱없이 작았고, 이래서 바둑은 허망하게도 역전이었다(흑4와 백7은 패때림).
[4도-낙승]
흑1로 이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백2로 잇지 않을 수 없을 때 흑3 정도로 밀면 흑이 많이 좋은 국면. 아마도 낙승이었을 것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