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신예대항전에 출전한 프로기사들. 맨오른쪽 아래가 이번에 중국룰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내에서 하듯 착점했다가 벌금으로 두집 손해를 본 허영호 3단. | ||
마지막 1분만 남은 상황이라면, 화장실도 1분 안에 갔다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화장실 갔다오는 것은 봐 주는 것인지. 그렇다면 1분 초읽기 와중에서 마지막입니다. 하나, 둘, 셋 …여덟, 아홉을 부를 때까지도 착점할 곳을 정하지 못했다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가는 척하며 나갔다오면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인지 ….
바둑을 둘 때, 돌을 집어 자기가 두고자 하는 곳, 바둑판의 한 교차점에, 일직선으로 정확하게 갖다 놓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돌을 그 부근에 두들겨 놓고 탁! 혹은 슥! 끌어서 목적지에 갖다 놓는 것 아닌가. 바둑돌이 대국자의 손에서 떨어져 바둑판 위에 놓이기까지, 1초쯤 되는 시간에 바둑돌이 판에 붙었다 떨어졌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엄격하게 가리기 어려운 것. 육안으로 식별이 기능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정밀 비디오 촬영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난센스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비거리가 되니 어쩌랴.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규정을 해 놓고 있다. 이 방면에서는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대륙의 사람들이 의외로 섬세하다.
구랍 21∼25일 중국 톈진에서는 제3회 한·중·일 신예기사 대항전이 열렸는데, 주최측 중국에서 재미있는 대국 규정 몇 가지를 선보였다.
1)패싸움을 하다가 팻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내면, 한 수를 쉬고 벌금으로 2집을 물어야 한다.
바둑의 승부는, 결국은 ‘한 수 차이’인 것을, 한 번을 굶는다면, 직전까지 아무리 유리한 바둑이었다 하더라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2집을 또 빼앗기니, 팻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내면, 사실상 그 시점에서 승부는 끝인 것. 다만 그냥 실격패로 처리하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한 번의 기회는 더 주는 것이니, 질 때 지더라도 억울함은 좀 덜할 듯.
2)상대의 돌을 따낼 때, 돌을 다 들어낸 후에 계시기의 버턴을 눌러야 한다. 어기면 벌금 2집이다.
3)일단 착수를 하면, 돌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하더라도, 돌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벌금 2집이다. 그리고 옮기더라도 처음 착수한 근처에 착점을 해야 한다.
처음에 딱! 하고 두들긴 후 옆으로 슥! 옮기는 것까지는 허용이 되는 모양이다.
4)초읽기 상황에서 화장실 가는 것은, 한 번만 인정한다. 단, 그것도 착수를 한 다음에 가야 한다.
대국 전에는 물론 대국 중에도, 아무리 속이 타더라도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미리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는 훈련도 필요할 것 같다 …*^^*
이번 제3회 대회에서는 한국의 허영호 3단이 ‘묘한 룰’의 희생양이 되었다. 허 3단은 일본 모치츠키 4단과의 1라운드 대국. 허 3단의 돌이 바둑판에 살짝 닿은 듯했는데, 착점된 곳은 다른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는, 돌에서 손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경우라면 묵과되는 것이 보통인데, 일본 선수는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은 돌이 바둑판에 닿은 것으로 인정되어 허 3단은 2집을 빼앗긴 것. 위의 조항 중 제3항의 위반이다.
그런데 그 전에, 일본 선수도 허 3단의 돌 두 점을 따낼 때, 돌을 다 들어낸 후에 계시기를 누른 것이 아니라, 착점만 하고는 바로 바로 계시기를 눌렀다는 것.
이것은 제2항의 위반이므로 역시 벌금 2집인 것인데, 허 3단이 즉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전문기사라면 착점의 태도 혹은 방법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니, 신중히 가다듬어 따르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