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현 | ||
‘대박’으로 불리는 박찬호보다 빠른 연봉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김병현이 지금과 같은 활약을 펼친다면 2년 후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다음엔 박찬호를 능가하는 엄청난 부를 거머쥘 것이기 때문.
1994년 초 박찬호가 LA 다저스와 계약을 체결한 이래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MLB) 도전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박찬호는 처음부터 계약금 1백20만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돈을 받으며 각광을 받았고 MLB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했다.
그가 다저스에서 6년간의 활약을 거쳐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평균 연봉 1천3백만달러, 약 1백56억원의 연봉을 받는 스포츠 재벌로 탄생하면서, MLB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는 ‘약속의 땅’이라는 인식도 들게 됐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 야구에 도전만 하면 젖과 꿀을 보장받는 것일까.
박찬호가 MLB의 사상 첫 한국 선수로 등록된 지 꼭 10년, 그동안 무려 27명의 한국 선수들이 MLB 팀과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 정복’이라는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러나 빅리그에서의 성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꿈이 이루어질 확률이 극히 희박할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다.
박찬호와 같은 해 타자로는 최초로 MLB에 도전했던 최경환이 계약금 5만달러에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계약을 맺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지만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결국 국내로 복귀하고 말았다. 야수의 벽은 투수보다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6년 박찬호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MLB 팀들이 극동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국 선수들의 미국행은 계속 이어졌다. 1997년에만 봉중근(애틀랜타) 김재영(보스턴) 서재응, 서재환(이상 뉴욕 메츠) 김선우(보스턴, 현 몬트리올) 등 5명의 유망주들이 미지의 땅으로 떠났다.
그 중 봉중근(1백20만달러) 서재응(1백35만달러) 김선우(1백25만달러) 등은 박찬호를 능가하는 고액의 계약금을 받아 잠재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후 1998년에 정석(다저스)을 포함해 조진호(보스턴) 백차승(시애틀) 등이 도미했고, 1999년에는 김병현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백25만달러에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 박찬호(위왼쪽), 봉준근, 서재응(아래 왼쪽), 최희섭 | ||
2001년까지도 이승학, 김일엽(이상 필라델피아) 안병학(보스턴) 류제국(시카고 컵스) 등이 미국에 진출해 추세가 지속됐지만 2002년에는 정성기(애틀랜타) 단 한 명만이 태평양을 건너가 국내 유망주들의 미국 도전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결국 2003년에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선수가 한 명도 없는 가운데 시즌을 맞았고 시즌 종료 후 이승엽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무산되고 말았다.
박찬호가 MLB 본바닥에서도 보기 드문 대박을 터뜨리고, 김병현도 최근 보스턴과 2년간 1천만달러가 넘는 계약을 맺으면서 여전히 MLB는 돈과 명예를 가져다주는 ‘약속의 땅’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위치에 서기까지 선수들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그런 노력과 땀과 피를 흘리면서도 그 자리에 서지 못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인데도,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곧잘 망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MLB에 자리를 잡은 한국 선수는 5명에 불과하다. 박찬호와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봉중근이 코리안 빅리거로 등록됐다.
그 중 지난 시즌 MLB에서 루키로 활약한 서재응, 봉중근, 최희섭 등은 모두 최저 연봉인 30만달러를 받았다. 물론 한화로 환산할 경우 3억6천만원의 거액이지만, MLB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2백만달러를 넘긴 지 몇 년째인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최소의 액수다.
그나마 최근에는 MLB 구단들의 적자가 이어지는 등 경기가 불황이라 소위 ‘대박’을 터뜨린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되고 말았다.
마이너리그에서 사라지는 선수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당장 한국 선수들만 봐도 그렇다. 미국에 도전한 27명의 선수 중에 빅리그의 다이아몬드에 발을 디뎌본 선수는 단 8명뿐이다. 그나마 김선우, 조진호, 이상훈 등은 풀타임 빅리거로 한 시즌도 뛰어보지 못하고 잠깐씩만 마운드를 밟아봤을 뿐이다.
언뜻 보면 27명 중 8명이라면 30%에 가까운 대단히 높은 확률이다. 풀타임으로 뛴 5명만 따진다고 해도 18.5%의 성공률이다. 그러나 난다 긴다 하는 스카우트망을 가지고 있는 MLB 팀들이 성공을 어느 정도 확신하고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데려간 선수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성공률은 아주 낮다고 봐야 한다.
미국 본토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는 수만 명의 야구선수들 중에 90% 이상이 마이너리그 계약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27명의 한국 선수들 중 12명은 이미 MLB 진출을 포기하고 조진호나 이상훈처럼 국내 야구로 복귀했거나, 아예 야구계에서 은퇴해 버렸다. 그리고 송승준 백차승 추신수 류제국 안병학 이승학 김일엽 정성기 권윤민 등은 여전히 마이너리그에서 뛰면서 MLB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