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TGㆍ왼쪽) 토마스(LG) | ||
이들이 코트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흑인 특유의 유연함에서 뿜어져나오는 호쾌한 덩크슛처럼 서로 엇비슷할지 모르지만 코트 밖 한국생활은 천양지차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선수들의 ‘한국생활 적응하기’ 백태를 살펴본다.
국내 프로농구에서 외국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보니 10개 구단은 이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매사에 신경을 쓰고 정성을 쏟는다. 그래서 외국선수들 대부분은 “타향살이지만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며 만족감을 표하는데 이런 주변의 관심과는 별개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음식’이다.
이럴 땐 통역이 제일 바빠진다. 화이트와 윌리엄스(이상 인천 전자랜드), 바비(대구 오리온스)가 대표적인 ‘신토불이’(?) 선수들. 이들은 한국음식에 손도 대지 못해 식사 때마다 TGI나 아웃백 등 외식업체에 가서 통역이 직접 음식을 공수해 온다.
반면 한국음식을 태연할 정도로 잘 먹는 선수들도 여럿 있는데 홀(원주 TG)의 왕성한 식성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비롯해 각종 찌개를 이미 섭렵했다는 홀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은 흰쌀밥에 간장을 비벼서 먹는 것이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통역 유동혁씨는 “어릴 때 참기름 넣고 비벼먹던 걸 기억나게 하는데 홀은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박카스도 좋아한다”면서 “최근에는 중국집 회식에서 만두와 깐풍기 등도 거침없이 소화해 냈다”며 놀라운 식성에 혀를 내둘렀다.
토마스(창원 LG)는 동료 페리맨이 해산물에 전혀 손을 대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생선회를 비롯해 간장게장, 심지어 추어탕까지 거침없이 섭렵해 주변에서 ‘몸에 좋은 건 알아 가지고∼’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다. 아비(서울 SK)의 경우는 양부모가 중국인이라 동양음식을 어릴 때부터 먹고 자라 큰 거부감이 없다고.
▲ 페리맨(LGㆍ왼쪽) 데릭스(TG) | ||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한국을 찾는 여자친구들이 머무르는 기간은 보통 2주 내외. 구단에서는 이 때면 ‘기러기 커플’들을 위해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숙소에 아늑한 자체 공간이 마련돼 있는 구단에서는 방해받지 않을 만한 방을 따로 배정해 주기도 하고 아예 호텔을 잡아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 뒤에는 주변의 놀림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밤에 뭐 했느냐’ ‘다리가 후들거리지는 않느냐’ ‘오늘 시합에 지장은 없는 거냐’와 같은 동료선수들의 짓궂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이런 분위기를 가장 능청스럽게 넘기는 선수가 페리맨(창원 LG)이다. 페리맨은 “나 어떡하지. 여자친구가 결혼할 때까지는 꼭 순결을 지키고 싶어해. 그래서 그냥 잠만 잤어”라며 우는 연기가 일품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데릭스(원주 TG)는 아예 사생활 자체를 오픈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외국선수들이 자주 찾는 곳은 역시 이태원이고 그 다음이 전자랜드나 테크노마트 같은 전자상가다. 항상 통역을 필요로 하는 외국선수들도 이태원을 찾을 때에는 ‘함께 가자’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통역 박준씨(서울 SK)는 “(외국인 선수들이) 친분 있는 다른 팀 선수들이나 이태원에서 만난 미군, 학원강사 등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교통편을 잘 모르니 운전을 해달라는 제안 정도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때론 오히려 선수가 통역에게 친절히 이태원을 가이드(?)해 주는 경우도 있다. 데릭스는 얼마 전 유동혁씨에게 양복을 저렴하게 맞춰 입을 수 있는 양복점을 소개해주기도 했었다.
이태원은 쇼핑과 함께 외국선수들이 편하게 한잔 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가끔은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통역 문상운씨(대구 오리온스)는 “외국인 선수가 미군과 싸움을 벌이다 경찰서에 붙잡혀 갔는데 말이 통하지 않자 통역을 급하게 찾았던 경우도 있었고, ‘술 먹고 자다 일어나 보니 모르는 여자의 집이더라’며 통역보다 더 황당한 표정으로 하소연한 선수들도 있었다”며 통역들 사이에서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한편 이와는 달리 건전하게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도 많다. 맥클래리(대구 오리온스)는 한국의 고궁 나들이에 관심이 많고 트리밍햄(부산 KTF)은 방에서 여자친구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게 낙이다. 또한 ‘게임광’인 데릭스는 온갖 게임기를 다 갖고 있어 동료들에게 인기가 높다.
골프가 취미인 레이저(대구 오리온스)는 정대호 단장에게 라운딩을 하자며 도전장을 내밀어 조만간 코트가 아닌 필드에서 동·서양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