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투데이 | ||
그동안 휴일에도 숙소 밖 외출을 삼가던 이승엽이 고이 모셔둔 골프채를 꺼내든 이유는 한국에서 친형처럼 지내는 에이전트 김동준 J’s엔터테인먼트 사장이 격려차 들어왔기 때문. 가고시마 인근의 골프장으로 향하면서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 응한 이승엽은 시종 밝고 건강한 목소리로 자신의 근황을 들려주었다.
─일본 생활은 어떤가.
▲똑같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야구하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돼 온 것 같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17일부터 청백전이 열리고 이번 달 말이면 시범경기가 시작된다. 그때쯤이면 ‘국민타자’라는 타이틀이 허울뿐이었는지 아니면 실력이 뒷받침된 칭찬이었는지를 제대로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가기 전에 가장 크게 걱정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나.
▲걱정을 안했다면 거짓말일 테고…. 가장 크게 우려했던 부분이 선수들과의 의사소통, 친화력이었다. 팀 분위기도 그렇고. 일본 선수들한테는 남미나 미국에서 온 용병들을 대하는 것과 한국 등 아시아 용병들을 대하는 데 시각적인 차이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 점에 신경이 쓰였는데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었다. 아마도 시즌이 시작되고 만약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경우에 우려했던 시련이 닥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매스컴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기자들의 태도를 비교해 본다면.
▲이쪽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열성적이다. 선수 입장에선 일본 취재진들을 상대하기가 힘들고 벅차다. 훈련 마치면 20~30분씩 인터뷰를 매일같이 해야 한다. 구단에서 추리고 추린 인터뷰라고 하는데도 정말 고역이다. 하기 싫을 때도 많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금 그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아마 난리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응하곤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중 하나가 끊임없이 거론되는 아내 이송정씨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겠나. 일본 취재진들이 아내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만큼 내 아내의 미모를 인정했다는 증거 아니겠나(웃음). 기분은 좋지만 아내는 연예인이 아닌 야구선수의 아내일 뿐이다. 대리인인 김기주씨가 일본 취재진들한테 아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아직 시즌이 시작도 안되었는데 자꾸 이상한 쪽(연예계 진출 등)으로 몰고가는 선정적인 기사가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밸런타인 감독과 삼성의 김응용 감독을 가볍게 비교해 본다면.
▲일단 밸런타인 감독님은 말이 많고 김응용 감독님은 말수가 적다. 또 밸런타인 감독님이 훈련장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훈련을 주도하며 액션을 크게 취한다면 김 감독님은 덕아웃에서 훈련을 지켜보며 눈빛으로 모든 걸 말한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연습하면서 시즌 전까지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을 꼽는다면.
▲타격면에선 어느 정도 안정이 된 것 같다. 언론에서 자주 거론하는 것처럼 수비가 복병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 최근 팔이 좀 안 좋아서 걱정이다. 하지만 주루플레이나 달릴 때의 스피드 등은 어느 선수와 겨뤄도 자신 있기 때문에 일단은 게임에서 잘 때리는 것만이 내 존재를 확실히 알리고 주전 자리 경쟁에서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는 후쿠우라와의 1루수 자리 경쟁에 대해선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나.
▲그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님이 결정할 몫이다. 후쿠우라의 수비력은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할 만큼 빼어나다. 하지만 내 방망이가 한국에서 56호를 때릴 때처럼 연일 불을 뿜는다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시즌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긴장이 되는데 너무 치열하게만 생활한다면 쉽게 지칠 수도 있을 것 같아 마음 속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는 중이다.
이승엽은 지금까진 한국에서 온 ‘국민타자’에 걸맞은 대우와 환대로 일본 선수, 매스컴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성적 여하에 따라 그 관계가 깨질 수도,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 때가 많다고. 어느덧 골프장에 도착한 모양이다. 오늘은 공 때리는 데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냥 즐기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치는 이승엽의 주변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