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이글스의 유승안 감독. | ||
하지만 숙소로 돌아간 감독들은 연기자(?)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거울 앞에서 올 시즌부터 코치와 선수들에게 선보일 ‘사인’을 개발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는 것. 야구팬들은 자연스럽게 모자를 만지고 코와 귀를 오가는 감독들의 사인이 전지훈련지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사연들이 숨어 있는 프로야구 사인에 얽힌 비밀을 풀어봤다.
해외 전훈중인 프로야구 감독들은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쉴 틈이 없다.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코와 귀, 그리고 모자와 가슴 등을 분주하게 오가며 더듬어(?)본다. 올 시즌부터 새롭게 선보일 사인을 개발하기 위해 홀로 연습하는 것이다.
덕아웃에서 주로 앉아서 사인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감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신체범위는 얼굴과 상반신 등으로 한정된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힌다면 벨트를 만지는 것 정도.
현재 일본 가고시마에서 해외 전훈중인 롯데 양상문 감독은 좋은 사인에 대해 “우리팀은 이해하기 쉬운 반면 상대팀은 눈치채기 어려운 사인”이라고 정의한다. 올 시즌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양 감독은 “그 동안 코치 경험과는 별개로 나만의 사인을 개발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연습경기를 하게 되면 그 동안 방에서 연습한 것을 본격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은근히 기대와 자신감을 나타냈다.
롯데의 코칭스태프가 필요로 하는 사인은 모두 30여 가지. 구단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다른 구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중에서 기본적으로 공격과 수비 때 감독이 직접 지시하는 사인은 각각 7개 정도. 특히 번트, 도루, ‘히트 앤 런’ 등의 사인은 결정적 순간에 승패를 갈라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신경을 더 많이 쓴다.
그럼 사인 속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소속 팀 코치와 선수들에겐 쉽게 읽히면서 다른 구단들의 눈을 피해갈 수 있는 걸까. 감독은 1개의 작전 지시를 내리기 위해 보통 7~8번의 눈속임 사인을 내보낸다. 조합방식과 그날의 ‘키’(key:프로야구에서 특정 신체부위를 가리키는 말)에 따라서 같은 제스처라도 해석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왼손이냐 오른손이냐에 따라서 진짜·가짜 사인이 정해질 수도 있고 그날의 키를 모자에 두는지 코나 귀 또는 가슴에 두는 지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사인이 탄생된다. 또한 왼쪽 귀를 만진 다음에 작전을 거는 ‘리얼’ 사인을 보내는 등 조합에 따라서도 여러 형태의 사인이 만들어진다.
▲ 기아 타이거스의 김성한 감독. | ||
김 감독은 “시합할 때 사인이 너무 단조롭거나 비슷하면 상대팀의 센스 있는 선수들은 바로 눈치 채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래서 감독들이 거울 보면서 얼굴이나 가슴 등 신체 부위를 만지며 표정관리까지 연습하는 모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덧붙여 김 감독은 올 시즌 새로운 사인을 하나 준비중이라는데 ‘번트 앤 런’이 바로 그것. 유독 번트 수비를 잘하는 투수들을 대비해 만드는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인을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한다 하더라도 한 시합에서 보통 3~4개씩 사인을 간파당하기도 하고 상대 사인을 알아채기도 한다. 이런 낌새가 파악되면 그날의 ‘키’에 변화를 줘서 시합을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고.
지난 시즌 이후 한화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유승안 감독은 “사인에 대한 노하우라기보다는 사인을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다시피해 나오는 것”이라면서 “상대팀 사인을 잘 뽑아내는 팀도 있지만 작년 1년 동안 (감독을) 해 보니까 사인을 간파당해 졌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역시 경기는 순간순간 민감한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의 사인만큼 수석 코치나 주루 코치가 선수들에게 그 작전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실 감독들이 덕아웃에서 점잖게 사인을 내린다면 베이스 가까이에 있는 코치들의 사인은 마치 교통경찰의 수신호를 보는 듯 현란한 게 사실.
이에 대해 기아 김성한 감독은 “상대팀에게 노출이 되는 코치들은 감독보다 사인 연습을 더 많이 해서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한다”면서 “경험이 부족한 코치는 벌써 조합이 엉성하거나 ‘아니올시다’라는 느낌이 온다”며 감독과 코치가 서로 분배해 사인을 만드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부분의 감독들은 감독의 절대권한인 사인이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작전을 걸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선수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고유의 팀컬러를 감독이 만드는 것보다는 선수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