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숙소에 비해 훨씬 부드럽긴 하지만 여자 선수들 간에도 위계질서만큼은 엄격하다고 한다. | ||
여자선수들끼리 모인 ‘금남의 집’에서는 남자 숙소에 비해 훨씬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가 흐르기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때로 질투나 알력 같은 선수들간 경쟁심리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
세심한 감성 때문에 선수들끼리 상처도 곧잘 주고받는다고 한다. 각 종목 전·현 여자팀 감독들의 경험담을 통해 여자선수들 특유의 ‘조직생리’와 ‘군기 문화’를 들여다봤다.
선수들은 여자지만 코칭스태프 대부분은 남자로 구성돼 있는 게 대다수 여자팀들의 현주소다. 그러다보니 감독들 또한 여자선수들의 눈치(?)를 본의 아니게 보게 된다고 한다.
요즘이야 구타 같은 전근대적인 방식의 지도법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언어 사용에서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 훈련을 하다 ‘관리 차원’에서 남자선수들한테 내지르는 육두문자는 여자선수한테는 점차 상상도 할 수 없는 단어로 변하고 있다. 상처를 쉽게 받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삐친 뒤의 ‘후폭풍’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감독들이 피부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
여자선수들이 갖고 있는 섬세한 감정은 남자선수에 비해 득이 되기도 하지만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감정선의 움직임에 따라 ‘선수들간의 알력’이 공공연하게 불거지기도 한다.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는 존중되지만 상대가 싫어지면 그 사람이 선배가 되었든 후배가 되었든 서로 말조차 붙이지 않을 정도로 급랭하는 것이 바로 여자선수들의 심리. 이럴 때에는 결국 감독이 지도자가 아니라 중재자와 협상가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전 여자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안종관 감독(INI 스틸)은 자신을 ‘해결사’로 불러달라고 말할 정도로 이런 면에서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안 감독은 “여자선수들끼리 한 번 티격태격하는 걸 적당하게 넘어가다 보면 차후에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팀 전체의 단합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조기 진압론’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해법은 앙숙 관계의 두 선수에게 합숙훈련을 하는 동안, 방을 같이 쓰게 한다든지 식사시간에는 손을 잡고 와서 따로 독립된 테이블에서 두 선수만 식사를 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전체 회식에서 맥주잔을 돌리며 자연스럽게 화해를 유도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자배구 현대건설 류화석 감독은 “행여 편애한다는 느낌을 주기라도 한다면 선수들이 삐치거나 질투심이 폭발하는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면서 “단체가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여자선수들의 입맛을 맞출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여자농구에서 얼짱 신드롬을 일으키며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신혜인(신세계)의 경우도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다. 신세계의 한 관계자는 “겉으로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선수는 없지만 (신)혜인이가 현재로서는 실력보다는 외모로 더 평가받다 보니 동료 선수들이 부러움과 함께 시샘을 느낄 수도 있다”며 묘한 기류가 물밑에서 흐르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안종관 감독도 여자선수들의 질투심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한 경험이 있다. 국내 실업팀이 몇 안 되는 현실이라 여자대표팀이 소집되면 본의 아니게 안 감독의 소속팀에서 절반 이상의 선수들이 차출되곤 했는데 이런 점이 엉뚱한 오해를 샀던 것.
안 감독은 “다른 팀 출신 선수들은 감독이 소속팀 선수를 더 챙겨줄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미리 피해의식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선수들이 감정표현을 자제하려고는 했지만 엔트리보다 많은 숫자가 소집되다 보니 한두 번 연습경기에 못 나간 선수들은 미리 자포자기해 버리는 경우도 잦았다”면서 축구보다 어려운 게 여자심리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칫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여자선수들 같지만 위계질서만큼은 남자선수들 못지않다. 옛날처럼 선배들이 얼차려를 시키거나 권위적으로 대하는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어도 ‘군기반장’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물론 눈물나게 하는 ‘군기반장’이 있다면 그 뒤에서 뒤치다꺼리를 하는 마음 여린 ‘언니’들도 있다.
2004년 V투어 전 대회를 석권한 현대건설 여자배구팀에선 11년차인 구민정이 “배구는 결코 개인의 운동이 아니다”고 외치며 기합을 넣는 역할을 맡고, 주장인 이명희는 말도 제대로 못 거는 신입생 후배를 다독거려주는 걸로 팀워크를 다진다. 여자핸드볼대표팀에서는 맏언니 이상은이 마음이 여려 심한 말은 못하지만 허허실실 전략으로 후배들을 리드해 나가고 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