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즉시 바로 파주트레이닝센터로 들어가 올림픽대표팀과 처음으로 조우를 하는 정말 정신없는 스케줄이죠. 이번 주에는 지난 27일 이탈리아로 건너가 원정경기까지 치른 터라 비행기 타는 게 공포스러울 정도입니다.
이탈리아에선 예전에 (안)정환이형이 있던 페루자와 UEFA컵 3라운드 원정 1차전을 치렀어요. 드디어, 비로소, 마침내, 12경기 만에 풀타임으로 출장해 감회가 남달랐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0-0으로 비기고 말았어요. 그래도 ‘박지성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금은 보여준 것 같아 기분 좋은 경기였습니다.
한국 언론에선 저와 (이)영표형이 정환이형의 복수를 대신 한다느니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는데 솔직히 그런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상대팀이니까 무조건 이겨야 했지 페루자라고 해서 특별한 느낌은 없었거든요. 아, 페루자 홈구장에 들어서면서 ‘여기가 바로 정환이형이 뛰었던 곳이구나’란 생각은 했어요.
2002월드컵 때는 이탈리아 선수들의 경기가 상당히 거칠고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프로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럽 축구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이탈리아처럼 ‘한성질’하는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부대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축구생활을 하다보니 이탈리아 선수들 정도의 ‘거칠기’는 이미 유럽에선 보편화된 현상이었어요.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오신 뒤 자주 하셨던 말씀이 ‘한국선수들은 너무 얌전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전 처음에 그 말을 이해 못했어요. 한국선수들의 수비도 장난 아니게 터프하거든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그 말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유럽 선수들은 그라운드의 컨트롤 능력이나 근성, 기본기 등이 항상 절대치를 이루고 있어요. 기복이 거의 없는 편이에요. 그런 상태에서 상대에 대해 강한 압박을 가하거나 공을 뺏고 돌진하는 능력이 더해지니까 대단한 파워를 뿜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3일 서울에서 벌어지는 중국전은 여러 가지로 부담스런 경기입니다. 우리팀 선수들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딱 하루만 발을 맞춰보고 들어가는 셈이니까요. 경기 결과에 따라 역적이 될 수도, 해결사로 칭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대표팀에서 쌓은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끔 정말 애써보려고 해요. 그래도 걱정되네…. 선수들 이름은 알고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죠. 10일 만에 돌아가는 한국의 하늘은 그동안 어떻게 변해 있을까?
2월29일 에인트호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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