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강동윤,윤준상 (왼쪽 아래)원성진,최철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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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장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33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1백단 돌파 자축연을 가졌다. 현재 한국기원 소속 기사는 2백 명이 조금 안 된다. 권도장 출신이 무려 6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충암’ 동문이 3백단을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학교와 도장을 숫자로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33명에 1백단 돌파라는 양(量)도 양이지만, 권도장 사람들이 더욱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은 질(質)이다. 대표적인 몇 사람만 들겠다. 이세돌 9단과 최철한 7단, 그리고 원성진 5단 등이 권도장 출신이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 아닌가. 세 사람 모두 ‘포스트 이창호’로 거명되고 있다.
개성도 뚜렷하다. 이세돌은 조훈현류의 전광석화 전투 스타일, 최철한은 두텁게 은인자중하다가 찬스다 싶어 한번 물었다 하면 결코 놓지 않는 괴력의 바둑, 원성진은 차분한 실리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마라톤 스타일. 바둑계 사람들은 이들 세 사람이 세 방향에서 협공한다면 이창호도 오래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 권갑룡(오른쪽)-권효진 부녀. 사진제공=한국기원 | ||
두 자리를 권도장 출신이 차지한 것이다.
권도장 33명은 또한 순수혈통(?)을 자랑한다. 다른 바둑교실이나 도장에서 오래 공부하다가 입단 직전에 들어와 집중 훈련을 받고 입단한 경우도 제외시켰고, 권도장에서 죽 공부를 했지만 마지막에 다른 도장이나 사범을 통해 입단한 케이스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유창혁 9단도 어린 시절 권도장에서 3년쯤 공부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권도장은 초창기에는 여성 기사의 메카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75년 조영숙·윤희율 두 여류 프로초단의 탄생 이후 맥이 끊겼다가 1990년에 재개된 여류입단대회 첫 통과자, 현재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인 남치형 초단이 권도장 출신이다. 이후 김민희 윤영선 하호정 강승희 등이 차례차례 입단했고, 그 소녀들이 한국 여성 바둑의 기반을 다졌다. 1995년에는 권 7단의 딸 권효진이 입단해 한국 최초의 부녀기사가 되었다.
권도장에는 이세돌 최철한 원성진 말고도 ‘무서운 아이’들이 즐비한데 윤준상 강동윤 김지석 백홍석 이영구 등이 그들이다. 모두 10대다. 요즘은 대기만성은 잘 통하지를 않는다. 설득력도 별로 없다. 바둑의 품격이나 예술성이라면 연륜과 원숙미 같은 것이 중시되어야 마땅한 것이지만, 승부사로서의 대성 여부를 논하는 자리라면 20대 초반에 결판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0대 중반에는 이미 확실한 가능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윤준상은 별명이 ‘윤펀치’다. 펀치력으로는 이세돌 최철한 말고 송태곤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핵주먹’인데, 윤준상의 파워가 그들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못하지 않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얘기다. 강동윤은 이미 입단 전부터 ‘별처럼 빛나는 기재의 아이’라는 말을 들었던 소년이다.
지난해 입단한 김지석은 일찍이 광주(光州)에서 조훈현 이래의 기재라고 떠들썩했던 소년이다. 올해 15세, “사실은 지금보다 몇 년 더 일찍 입단할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는 것인데, 2004년 3월 현재도 한국기원 프로기사 중 최연소 기사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