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현 | ||
듣는 이에 따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앞으로 언론과 상대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즉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 슬러거 배리 본즈도 최근 미국 미디어 관계자들을 향해 “앞으로 야구 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은 현재 메이저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근육강화제, 즉 스테로이드 복용 혐의 때문이다.
이렇듯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과 언론과의 사이는 원만하지가 않다. 때론 마치 ‘언론과의 전쟁’을 벌이는 듯하다. 메이저리그에서 활동중인 코리안 빅리거들의 경우는 어떨까. 이들의 언론관을 한번 살펴보자.
현재 박찬호의 대 언론관을 보면 예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동한 앨버트 벨(38)을 연상시킨다. 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벨은 은퇴 말년 “인터뷰는 이메일로 하고 나에 관한 것을 알고 싶으면 홈페이지를 보라”며 미디어 관계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꺼렸다. 벨은 엉덩이 부상으로 한창 전성기 때인 지난 2000년 볼티모어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박찬호는 지난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한 뒤부터 언론보다는 팬들과의 직접 대화로 언로를 만들고 있다. 즉 홈페이지에 자기의 심경을 털어놓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최근 애리조나에서 기수련을 하는 사진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기자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언론관에선 차이가 나타난다. 선수들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을 밟으면 기자들의 취재 형태가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여기에 익숙해진다. 미국 기자들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준다. 그러나 국내 기자들은 ‘한국식 취재’로 밀어붙인다. 그러다보니 지난해처럼 ‘김병현 사건’도 벌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오늘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언론이다.
▲ 박찬호 | ||
미국에 진출한 국내파 가운데 가장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병현도 처음에는 언론과의 관계가 원만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면서 이제는 기자들과의 관계가 물과 기름처럼 돼버렸다. 물론 박찬호와 김병현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기자들과는 얘기를 나눈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뉴욕 메츠의 서재응은 등판하는 당일 경기 전에도 특파원들의 질문에 대답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하다.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부터 등판하는 날 경기 전에는 기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불문율처럼 지키고 있다. 서재응은 성격이 활달하다. 그는 언론을 이용할 줄 알고 인터뷰 내용에도 알맹이가 있다.
플로리다 말린스 최희섭도 기자들에게는 선호 대상이다. 아직은 슈퍼스타로 도약하기 전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기자들의 취재에 매우 협조적이다. 그를 만나는 기자들은 항상 “지금의 마음을 변치 말라”고 충고한다. 그의 에이전트 이치훈씨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애틀랜타 봉중근도 오랫동안 마이너리그 생활을 경험했고 국내 특파원들과 접촉이 뜸해서인지 취재에 응하는 자세가 적극적이다. 지난 2001년 스프링캠프 때 올랜도의 한 식당에 김용희 현 롯데 2군 감독, 특파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 오면서 소속팀 애틀랜타 모자를 선물로 갖고 나왔을 정도로 마음이 순수하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기자들과 가장 사이가 불편했던 선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였다. 지역언론 보스턴 기자들과 마치 원수처럼 지냈다. 윌리엄스는 통산 두 번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두 차례나 타격삼관왕(타율-홈런-타점)에 오른 1942년과 47년에는 엉뚱한 선수에게 MVP 수상이 돌아갔다. 보스턴 담당 기자가 최하위 선수에게 투표를 했기 때문이었다. 기자들과의 불편한 관계로 엄청난 손해를 본 사례다.
스타에게 언론은 공기와 같다. 외면하고 싶어도 현역에 있는 동안에는 외면할 수가 없다. 언론은 적이 아닌 동업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