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 진출했다가 다시 국내로 복귀한 정민철(한화). ‘몸값 못한다’는 소리를 듣다가 최근에는 구위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평이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텍사스에서 뛰고 있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31) 또한 ‘먹튀’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 2002년 텍사스와 5년간 총액 6천5백만달러에 자유계약선수(FA)계약을 맺었지만 그가 2년간 거둔 승수는 고작 10승에 방어율이 무려 6점대다. 이쯤 되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것은 당연지사.
FA의 맹점으로 불리는 ‘먹튀’ 선수들. 물론 선수들이 부상과 사고 등으로 본의 아니게 이런 불명예를 안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구단들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이 간절할 만하다. FA 제도 출범 5년째인 한국 프로야구의 ‘먹튀’ 선수들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았다.
1. 먹튀 원조 - 유망신인 실력 곤두박질
한국 프로야구에 ‘먹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FA 선수들 때문이 아니다. 말 그대로 계약금을 먹고 튀어버리는(?) 신인 선수들 때문이었다.
당사자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먹튀’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선수는 바로 전 LG 투수 이정길. 96년 당시 신인 투수 최고액인 3억8천만원에 LG와 계약했으나 그가 LG 마운드에서 거둔 승수는 5년간 단 1승뿐이다. 고질적인 어깨부상에 시달린 그는 결국 아쉽게도 2000년 은퇴하고 말았다.
이정호(22·삼성), 김광희(21·LG) 등의 경우도 구단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매한가지. 대구상고 출신인 이정호는 2001년 당시 고졸 최고액인 계약금 5억3천만원을 받았지만 1군 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2군에 머물고 있다. 성남고 출신인 김광희(계약금 3억2천만원)는 이정길의 복사판. 당시 김진우(21·기아), 류제국(21·시카고 컵스)과 함께 ‘고졸 빅3’로 꼽히면서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변변한 성적 없이 팀 무단이탈 등의 사고를 치면서 구단 관계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지금은 타자로 전업을 꾀하며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는 중.
2. 국내 복귀파 먹튀 - 해외부적응 국내까지 '쭈욱'
국내 복귀파 ‘먹튀’는 해외에서 적응하지 못한 선수들을 거액을 주고 데려 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다. 95년 삼성은 필라델피아에서 뛰고 있던 최창양(30)을 역수입했다가 돈만 날렸다. 그는 최고 구속 152km의 빠른 공과 수준급의 서클 체인지업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우승에 목말라 있던 삼성은 이적료 20만달러를 포함하여 7억원에 그를 모셔(?)왔지만 컨트롤 불안과 한국야구 적응 부족으로 성적 부진을 거듭하다 급기야 2002년 구단에서 방출되는 설움을 겪어야만 했다.
메이저리거였던 조진호(28·SK) 또한 ‘복귀파 먹튀’의 선봉장(?)이란 오명을 써야 했다. 지난해 그의 성적표는 19경기 출전에 4승5패 5.20의 방어율. 메이저리그에서 13경기 동안 2승6패에 6.25의 방어율을 기록한 것을 보고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격차가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아 좋네요”라고 말한 한 네티즌의 비아냥거림처럼 그의 지난해 성적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이 한국시리즈에선 엔트리에 들지 못하는 수모까지 당했다.
정민철(31·한화)은 현재 ‘먹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와신상담중이다. 2002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국내로 복귀했지만 컴백 첫해에 부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하지 못한 것. 결국 구단은 지난해 사상 최고액인 1억원 연봉삭감이라는 자존심 상하는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2003년 10승대(11승10패)의 성적을 내면서 구위가 살아나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까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3. FA먹튀 - 고연봉 다년계약 '이중고'
구단에 가장 많은 피해를 안겨주는 것은 역시 ‘FA 먹튀’ 선수들이다. 거액의 계약금에 높은 몸값, 게다가 다년 계약까지…. 이런 선수들의 부진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구단을 두 번 죽이는’ 처사다.
30-30 클럽에 가입하며 최고의 ‘호타준족’ 중 한 명으로 꼽히던 홍현우(31·LG). 그는 오른손 거포 부족의 고민을 한방에 날려줄 것이라는 구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2001년 당시 FA 사상 최고 금액인 18억원을 받고 해태에서 LG로 팀을 옮겼다. 하지만 결과는 대 실망.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군을 들락거리며 2년 연속 2할대 초반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하는 바람에 코칭스태프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삼성의 ‘FA 먹튀’ 3인방 김기태(34·SK), 김동수(34·현대), 이강철(37·기아). 이들이 삼성과 맺었던 FA 계약 총액은 무려 34억원. 그러나 정작 시즌이 시작된 뒤엔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결국은 계약기간도 만료되기 전, 친정 팀으로 복귀하거나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두고 ‘때린 곳 또 때린다’고 표현하는 걸까? 이전 팀에서 ‘먹튀’로 불리는 불명예를 안았던 이들은 팀을 옮긴 후 훨훨 날며 진가를 발휘했다. 현대로 트레이드된 김동수는 지난해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고, 친정팀 기아로 복귀한 이강철도 나이를 잊어버린 꾸준한 활약으로 자신을 떠나보낸 삼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정수근(롯데, 6년 40억6천만원), 이상목(롯데, 4년 22억원), 마해영(기아, 4년 28억원), 진필중(LG, 4년 30억원) 등 거물급 선수들이 FA 계약으로 팀을 옮긴 올해, 구단들의 바람은 단 한 가지뿐이다. ‘제발 뿌린 만큼 거둘 수 있게 하소서.’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