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한국 야구가 뿌리째 흔들릴 뻔 했었다. 전국의 초·중학교 선수들이 박정태의 타격폼을 흉내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적인 타격폼에 길들여졌던 어린 선수들한테 그의 폼은 신기하면서도 가장 재밌는 ‘흉내 거리’였다. 박정태가 어린 선수들의 폼이 망가지는 데에 크게 공헌(?)했던 셈이다. 급기야 박정태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폼을 절대 따라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대기록이 깨지고 말았다. 삼성의 박종호가 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4월19일 현재 박종호는 37경기 연속 안타를 치며 아시아 최다연속경기 안타 신기록을 작성했다. 2000년 타격왕에 올랐던 박종호는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크게 각광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감독들이 꼭 데리고 있고 싶어 하는 선수임은 분명하다.
다른 팀 타자들조차 경기 중에도 박종호가 공을 잡은 뒤에야 ‘아, 오늘 박종호가 시합에 나왔구나’ 할 정도로 튀지 않고 조용하다. 그의 플레이는 재미와도 거리가 멀다. 그래서 언제 뭘 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그가 경기에 빠진 날은 동료들도 불안해하고 감독도 답답해한다. 큰 구멍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단다. 라면에 스프 빼고 먹어보면 그 느낌이 올 것이다. 박종호는 유순한 성격이지만 근성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92년 고교 졸업 후 LG에 입단한 그는 어떻게 프로에 들어왔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누가 봐도 훈련생 수준이었다. 2군에서도 ‘삐꾸’로 지내면서 덩치도 뭐만 해 잠깐 프로를 스쳐가는 선수쯤으로 여겼는데 ‘타자 제조기’ 김용달 코치의 권유로 스위치타자로 거듭났다.
사실 당시 스위치타자로의 시도는 모험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서 있던 박종호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던 거다. 박종호를 자르려 했던 구단도 스위치타자로 변신한 박종호한테 1년만 더 기회를 주기로 했었는데 이게 웬일, 1군 선수 ‘땜방’으로 올라와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당당히 주전자리를 꿰차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특유의 성실함과 실속 있는 플레이를 펼치면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돼 버렸다.
당시 LG 숙소가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그는 매일 새벽 2시 이전에는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오질 않았다고 한다. 남들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한쪽으로만 스윙을 할 때 그는 양쪽을 모두 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체력소모도 많았다는 얘기다. 그런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박종호가 탄생한 것이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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