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경기 연속안타 신기록을 세운 삼성의 박종호는 기록을 위해 팀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 ||
통산 3천4백19안타, 1천8백44타점, 등번호 8번 영구결번. 20년이 넘게 보스턴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기록들을 만들어냈던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트리플 크라운’(타율·타점·홈런 왕)의 주인공 칼 야스트르 젬스키의 말이다. 최고의 개인 기록을 세웠지만 자신이 활약하는 동안 ‘밤비노의 저주’를 풀지 못해서일까? 그가 원했던 것은 위대한 자신의 기록 연장이 아니라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이었다.
선수들의 개인 기록이 좋으면 자연스레 팀 성적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개인 기록과 팀 성적은 묘한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개인 기록과 팀 성적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 기록 때문에 팀이 희생하거나, 팀을 위해 개인 기록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개인 기록과 팀 성적에 얽힌 뒷이야기를 모아봤다.
올 시즌 초 프로야구 최고의 화두는 단연 박종호(31·삼성)의 ‘연속경기 안타 신기록’이었다. 비록 ‘39’에서 그의 기록이 멈춰서긴 했지만 박정태(31경기)가 기록했던 한국 프로야구 최고 기록을 경신했음은 물론이고, 일본의 다카하시 요시코(33경기)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최고 기록마저 깨버린 대기록이었다. 박종호의 연속경기 안타행진은 초반 프로야구의 흥행몰이에 일조했고 그 자신도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 최태원 | ||
이렇다보니 선수 입장에서나 팀을 이끄는 감독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종호의 경우에는 안타 행진을 벌이는 동안 팀 성적도 좋았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다. 하지만 개인 기록과 팀 성적이 ‘따로국밥’(?)인 경우 한쪽을 과감히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2002년 ‘1천 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철인’으로 자리매김한 최태원(31·전 SK)의 경우가 그랬다. 1천 경기 이상 연속 출장은 1백28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고작 6명밖에 이루지 못했고 68년 역사의 일본에서도 5명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 하지만 1천 경기 출장 이후 팬들의 관심은 줄곧 ‘그의 연속 출장이 언제 마침표를 찍느냐’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위권을 맴도는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경기 후반 대타나 대수비로 1~2회 정도 그라운드에 나서는 것으로 기록을 계속 이어나갔기 때문이었다.
“태원이를 위해서나 팀을 위해서나 그 정도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를 바라보는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잘한 선택이었어.”
결국 당시 SK를 맡고 있던 강병철 감독은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렸고, 그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은 ‘1천14’에서 막을 내렸다. 최태원도 팀을 위해 개인의 성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던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안타까운 마음을 술로 위로했다고 하니 그 아쉬운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아무도 모르는 일.
최태원의 경우가 팀을 위해 선수의 기록을 포기한 것이라면 선수의 기록을 위해 팀 성적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 프로야구 팬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달성 여부였다.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결국 이승엽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56호 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 이승엽 | ||
이승엽이 55호 홈런으로 아시아타이기록을 세우던 기아와 삼성전. 적지인 광주구장 팬들도 환호하고, 상대인 기아 선수들까지 이승엽의 타이기록 달성에 축하인사를 건넸지만 정작 삼성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썰렁했다고 한다. 2위를 다투는 중요한 경기를 놓친 김응용 감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더그아웃을 나가버렸던 것이다.
“너무한 것 아니냐?”는 팬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개인 기록보다는 팀 성적이 우선인 감독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한 선수에게만 집중되는 관심은 자칫 팀 분위기 자체를 깰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기록을 세우며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이승엽의 홈런이었기에 드러내놓고 불평을 하진 못했지만 그에게만 쏟아지는 관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다른 스타선수들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김응용 감독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승엽이야말로 대기록을 앞두고 팬들의 열망과 팀 성적 사이에서 가장 고민해야 했던 당사자였을 것이다.
농구계의 속설에 따르면 한 선수가 40득점이 넘는 활약을 펼치면 팀은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실제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40득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에서 시카고 불스의 승률은 매우 저조했다고 하니 팀플레이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2002~2003시즌 SK 나이츠는 황성인(어시스트·가로채기)과 트리밍햄(득점), 존 와센버그(야투 적중률)라는 세 명의 타이틀 홀더를 보유하고도 꼴찌를 기록했다. 결국 개인기록과 팀 성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가깝고도 먼’ 관계가 아닐까.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