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진, 양준혁, 이숭용 | ||
최근에는 드물다고 하지만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와 포수와의 입심 대결이 볼 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타자의 집중력을 흐려 놓기 위해 포수는 타자의 약을 올렸고 지기 싫어하는 타자 역시 포수와의 신경전에 언변을 늘어놓으며 장외 대결을 벌였던 것. 하지만 최근에는 포수와 상당히 친분이 있는 타자가 아니라면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포수와 타자의 경우와는 달리 경기 중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 있다. 바로 ‘퍼스트 베이스’. 일단 1루에서는 가벼운 인사로 말문을 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루수가 선배냐 후배냐에 따라 인사를 먼저 건네는 순서와 내용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신예인 김주찬(롯데)이나 김태균(한화)처럼 상대팀에 선배들이 더 많은 경우에는 팀이 안타를 맞아도 밉든 곱든 인사부터 건네야 하는 처지다. 물론 친분이 없는 경우에는 가벼운 목례 정도를 건네거나 그냥 지나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안부 인사를 곁들인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어서 오세요’나 ‘안녕하세요’와 같은 인사를 던질 수는 없는 법. 이 점에 대해 김주찬은 “‘잘 지내시죠’라든지 ‘타격감이 좋으신 것 같은데요’와 같은 인사가 많다”며 ‘주례사’식 인사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배라고 해서 마냥 좋은 인사만 받을 수는 없는 법. 프로야구 선수들 가운데 노총각의 대부(大父)로 불리는 삼성 1루수 양준혁(삼성)은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 단골 메뉴가 ‘결혼은 도대체 언제 할 거냐’는 내용이란다. 동갑내기 1루수인 장원진(두산)은 “이제 준혁이로부터 다른 답이 나올 때도 된 것 같은데 올해도 (다른 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올 시즌 후 ‘유부클럽’에 가입할 예정인 현대 1루수 이숭용은 다행히(?) 결혼 공세로부턴 자유로운 입장. 이숭용은 “요즘 (양)준혁이형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데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며 “친한 사이에서는 야구 외적으로 사적인 대화들도 제법 오간다”고 설명했다. 특히 1루수는 잦은 ‘손님 접대’로 인해 다른 선수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라고.
마해영(기아)은 “1루수로 다른 선수들과 대화한 기억은 나지만 다른 팀 1루수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요즘 1루까지 살아나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
그 해 결혼한 새신랑들은 1루수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냥감’이다. 새신랑한테 주로 묻는 말은 아내의 내조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 한 선수가 1루에 진출한 새신랑한테 “야, 네 마누라가 보약 좀 많이 해주냐?”고 묻자 그 새신랑이 “야, 연봉 안 올랐다고 밥이나 많이 먹으라고 했다”고 답해 순간 1루심까지 포복절도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한편 대화하기 힘들 것 같은 선수와 코치와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눈길을 끈다. 주로 1루수와 상대팀 베이스 코치 사이에 오가는 대화들. 모두 선후배 사이다 보니 감정을 자극하는 멘트보다는 약 올리는 형태가 많은데 아무래도 ‘짬밥’이 많은 코치들이 유리한 형국이다.
코치들이 1루수에게 던지는 말 중에 대부분은 성적과 관련된 내용. ‘너 요즘 잘 나가더라’에서부터 ‘목에 너무 힘주는 거 아니냐’와 같은 칭찬을 빙자한 약 올림에서부터 ‘이번엔 고생 좀 제대로 하겠네’ 또는 ‘먹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니까’처럼 직격탄을 날리기도 한다고.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잠실경기에서는 LG 송구홍 1루 코치와 두산 1루수 장원진이 서로 ‘시끄럽다’며 놀렸다가 웃는 해프닝도 있었다. 투수를 응원하기 위해 ‘좋아, 좋아’를 연발하는 장원진에게 먼저 송 코치가 시끄럽다고 ‘잽’을 날렸고, 이후 1루에 출루하는 타자를 격려하는 송 코치에게 장원진 역시 “조용히 좀 합시다”라며 ‘태클’을 걸었던 것. 1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이 같은 멘트를 몇 차례 반복하다 합의하에 중지했다고 한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