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끝난 X-CANVA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신데렐라’ 안시현. 그는 속옷이 드러나는 노출 패션을 선보여 라운딩 내내 갤러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사진제공=코오롱엘로드 | ||
이처럼 여자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때로는 실력보다 외모로 그 가치를 평가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그것이 마케팅과 관련되어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여자 스포츠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거리인 ‘섹시 마케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본다.
요즘 여자 스포츠계의 해묵은 ‘벗기기 논쟁’에 다시금 불을 지핀 종목은 다름 아닌 축구다. 여자 축구의 흥행부진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여자 축구선수들의 유니폼을 섹시하게 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일어난 것.
지난해 10월에 미국에서 개최되었던 여자축구 심포지엄에서 섹시 유니폼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레 진행되더니 급기야 지난 2월 FIFA 블래터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여자 축구의 활성화를 위해선 여자 축구선수들한테 섹시한 유니폼을 입혀야 한다는 발언을 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한 술 더 떠 얼마 전 일본축구협회에서는 ‘슈퍼소녀 프로젝트’란 황당한 여자 축구 활성화 방안을 내놓아 그 논쟁에 더욱 불을 붙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대비, 모델을 지망할 수 있을 정도의 신체 조건을 가진 여성들을 축구선수로 영입하겠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골자. 모델 뺨치는 ‘쭉쭉빵빵’의 몸매와 체력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서양 선수들과의 체력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관중동원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남성들의 심리를 자극해 여자 축구를 흥행대박으로 이끌겠다는 것.
어찌 보면 황당해 보이지만 일본 축구협회 측에서는 이만한 아이디어가 없다며 프로젝트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반면 섹시 유니폼 발언이 물의를 일으키자 블래터 회장은 “요즘 미인들이 축구를 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피해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들을 살펴볼 때 여자 축구의 활성화 방안에 ‘섹스어필’이 들어가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 브라질의 미녀 축구 선수 밀레네 도밍게스. | ||
결국 ‘섹시코드’가 여자스포츠의 흥행에 부싯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요즘 여자 골프계에서는 미모 가꾸기 열풍이 불고 있다. 미LPGA의 ‘신데렐라’ 안시현(21·코오롱 엘로드)으로 시작된 ‘얼짱’ ‘패션 짱’ 바람이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
안시현과 박지은(25·나이키골프) 등 외모와 실력을 동시에 갖춘 선수들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큰 인기를 얻자 다른 스타급 선수들이 미모 가꾸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들어 한국 여자 선수들의 패션이 몰라보게 과감해졌으며, 성형수술을 한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골프대회는 선수들의 화려한 패션으로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특히 지난 16일 막을 내린 X-CANVAS 대회에서 안시현은 속옷이 훤히 비치는 과감한 의상을 입어 대회 내내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이에 대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안시현은 “이왕이면 많은 분들의 눈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신세대다운 개방적인 사고를 드러내기도 했다.
실력 있는 선수들은 자신을 꾸밈으로써 상품가치를 한껏 올리고 있다. 이는 선수들이 대회에서 벌어들이는 상금 규모보다 국내 골프업계의 스폰서 지원으로 받는 금액이 훨씬 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스폰서 입장에서 보면 외모와 실력을 동시에 갖춘 스타들을 지원하는 것이 자사 브랜드의 대박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섹시해지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골프업계 관계자들이 드러내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입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해외에서도 골프선수들의 미모 가꾸기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특히 LPGA 사무국에서는 발 벗고 나서서 선수들의 섹시함을 권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LPGA는 스포츠 판촉 5개년 계획에서 갤러리 동원과 시청률 제고를 위해서 선수들이 더욱 섹시해져야 한다는 권고 사항을 발표했을 정도다.
▲ 테니스계의 섹시열풍을 주도한 안나 쿠르니코바. 로이터/뉴시스 | ||
하지만 자신의 섹시미를 뽐내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벗기면 벗길수록(?) 흥행에 성공하는 여자 프로레슬링이나 선수들의 잘빠진 몸매를 보기 위해 해변을 가득 메운 비치발리볼 경기장을 보면 여자 선수들의 ‘섹시 전략’이 중단되지 않는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역시 문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는 여론이다. ‘성 차별적인 발상이다’ ‘여자 선수들을 성 상품화 하지 마라’는 등 여성계의 강력한 반발이 그것. 몇 년 전 여자 프로농구에서 문제가 되었던 ‘쫄쫄이’ 유니폼 사건은 단적인 예다.
남성들의 관음증을 자극해 관중 동원과 여자 프로농구의 흥행을 성공시키겠다는 발상으로 고안된 것이 몸에 딱 붙는 짧은 유니폼. ‘속옷이 보이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경기력에 지장을 받는다’는 선수들의 불만과 비난 여론의 벽에 막혀 다시 예전의 박스형 유니폼으로 원상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론 때문에 드러내놓고 진행하지는 못하지만 흥행과 직결된 ‘섹시 마케팅’을 한편으로 밀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국제배구연맹(FIVB)과 같은 국제기구에서조차 이와 같은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어깨와 히프가 상당부분 드러나고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두었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