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회장의 ‘깜짝인사’가 이번 파문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 ||
현대차의 오너인 정몽구 회장은 깜짝 인사로 유명하다. 이사급 이상의 임원인사에 관한한 현대차는 정기 주총을 전후한 정기 인사가 의미가 없다. 연중 수시로 전무나 사장급 인사가 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정확한 인사 이유를 현대차 쪽에선 밝힌 적은 없다. 그저 ‘일신상의 이유’ 때문이다.
특히 2005년은 깜짝 인사의 절정이었다.
2005년 8월 이상기 현대모비스 부회장의 깜짝 사퇴나 11월 김무일 현대INI스틸 부회장의 사퇴는 2004년 유인균 현대INI스틸 회장의 사퇴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정몽구 회장 경영인맥(MK 사단) 1세대의 퇴진이라는 세대교체로 받아들여졌다.
즉 재계에선 1세대의 급작스런 퇴장을 정 회장 특유의 깜짝인사를 통해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2세 경영승계를 앞둔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1세대의 퇴진을 앞당겼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8월에 있었던 MK 사단으로만 짜여져있던 재무라인의 요동은 일각에선 ‘이상 징후’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말 기아차 구태환 부사장이 사퇴했다. 현대정공 경리 출신인 그는 재무본부장이자 기아차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전성기를 누리는 듯하다가 급작스레 사표를 썼다. 그의 사임 뒤에는 그가 현안을 놓고 정 회장과 다른 의견을 냈다가 “그러려면 사표 쓰라”는 말 한마디에 사표를 진짜로 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구 부사장과 손발을 맞췄던 김장식 상무도 다른 계열사로 옮겨가고 기아차 재무팀은 다른 인물로 채워졌다.
물론 ‘MK 사단 재무사관학교’인 현대정공 출신들로 재무팀이 채워졌다. 구 부사장의 후임으로 온 신구식 상무도 현대정공 출신으로 INI스틸 등에서 재무 업무를 담당했던 것. 현대정공을 MK 사단의 재무사관학교라고 부르는 이유는 현대차의 재무담당 임원 이정대 부사장과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의 재무 담당 임원인 김영곤 상무 등 주요 3사 재무통이 모두 현대모비스 출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 사장인 정석수 사장도 현대정공 경리부 출신이다.
정석수 사장은 현대모비스 경리 담당 출신으로 2001년 현대하이스코 관리본부장(전무)을 시작으로 매년 보직을 옮기기 시작해 INI스틸, 현대캐피탈, 현대파워텍을 거쳐 지난해 9월 현대차 그룹의 핵이라 할 수 있는 현대모비스 사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이런 현대정공 출신의 ‘성공시대’ 흐름 속에서 구태환 부사장의 급작스런 퇴임은 현대차 안팎에서 석연치 않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또 1세대 격인 김무일 부회장이나 이상기 부회장도 롤러코스트 인사 끝에 사임했다는 점에서 이런 저런 뒷말을 낳기도 했다.
MK 사단인 현대차써비스에서 잔뼈가 굵은 이 부회장은 2003년 말 현대하이스코 부회장으로 승진, 2004년 10월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담당 부회장 발령, 2005년 4월 현대모비스 부회장 발령, 2005년 8월 사표 등 짧은 기간에 변화무쌍한 인사를 경험했다. 물론 이런 깜짝 인사는 정몽구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김무일 전 부회장도 고문으로 물러나기 전 마지막 3년 동안은 해마다 보직을 바꿨다.
이런 정몽구 회장의 깜짝 인사가 매년 거듭되면서 현대차그룹에 관한한 ‘깜짝 인사’는 더 이상 ‘깜짝 인사’가 아닌 ‘현대차 식’ 인사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선 이런 인사 스타일은 엄청나게 피곤하다. 이를 들어 일각에선 이런 깜짝 인사가 이번 현대차 비자금 파문을 불러온 ‘제보’의 단초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깜짝 인사는 임원들의 초고속 승진이나 전격적인 하차를 통해 철저한 실적관리와 상명하복을 불러내는 ‘정몽구 리더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파문을 통해 그 허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번 현대차 비자금 파문의 ‘제보자’를 현대차그룹에서는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05년 현대차 인사 일지 | |
1월 | 이전갑 현대차 부사장, 사장 승진 김익환 기아차 부사장, 사장 승진 윤국진 기아차 사장 사임 정석수 현대 INI스틸 사장, 현대파워텍 전보 |
2월 | 정의선 기아차 부사장, 사장 승진 김원갑 현대하이스코 사장, 부회장 승진 이재완 기아차 부사장 사임 |
3월 | 서병기 현대차 부사장, 사장 승진 |
4월 | 이상기 현대차 부회장, 현대모비스 부회장 전보 |
5월 | 김상권 현대·기아차 사장, 부회장 승진 |
8월 | 최한영 현대차 사장 전보 이재완 부사장(전략조정실장) 복귀 구태환 기아차 부사장(재경본부장) 사임 이상기 현대모비스 부회장 사임 |
9월 | 한규환 현대모비스 사장, 부회장 승진 정석수 현대파워텍 사장, 현대모비스 사장 복귀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 고문 위촉 |
11월 | 전천수 현대파워텍 부회장, 다이모스 부회장 전보 채양기 현대기아차 부사장, 사장 승진 김무일 현대INI스틸 부회장 사임 이중우 다이모스 사장 사임 주영섭 본텍 사장 사임 |
12월 | 이용도 현대INI스틸 사장, 부회장 승진 조남홍 기아차 부사장, 사장 승진 김익환 기아차 사장, 고문 위촉 |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