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김재박 현대 감독, 김응용 삼성 감독, 유남호 기아 감독대행. | ||
삼성 김응용 감독은 야구계에서 으뜸가는 뉴스메이커다. 김 감독은 정규리그 막판 또 다시 언론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했다. 삼성과 정규시즌 선두를 다툰 현대에 시즌 막판 기아가 일부로 져줘 형제나 다름없는 현대를 1위로 밀었다고 얘기한 것.
야구계에서는 김 감독의 얘기를 포스트시즌을 향한 포석으로 해석했다. 포스트시즌에 앞서 진출팀을 상대로 노련한 외곽 때리기를 시작해 기선제압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왜 김 감독은 제자나 다름없는 현대 김재박 감독과 20년 그림자인 기아 유남호 감독대행의 관계가 소원해졌을까. 마치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것처럼 말이다.
1981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잠실)에서 두 사람은 딱 한 차례 감독과 선수의 관계로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당시만 해도 김재박 감독으로선 김응용 감독은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스승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두 사람이 감독으로 맞닥뜨리면서 그렇고 그런 사이가 확 틀어졌다.
해태 유니폼을 입은 김응용 감독은 현대를 이기기 위해 심판 흔들기를 선택했다. 인천 출신의 한 심판이 편파판정을 한다고 심판진과 대거리해 분위기를 확 휘어잡았다. 김응용 감독은 그 심판을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며 심판뿐 아니라 현대의 리듬까지 흔들었다.
창단 이듬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김재박 감독이었지만 신인티를 벗지 못한 그는 결국 얼떨떨한 상태에서 노련한 김응용 감독의 뒤통수 때리기에 무너져 무릎을 꿇고 말았다. 김재박 감독은 감독으로서 기 한번 펴지 못하고 넘어진 첫 대결의 역사를 지금도 가장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다.
반면 유남호 대행과는 다소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83년 김응용 감독이 해태의 지휘봉을 쥐면서 데려간 사람이 바로 유남호다. 이후 지난해 중순까지 중간에 2년 정도 유 대행이 외도를 한 것만 제외하면 20년 가깝게 두 사람은 항상 바늘과 실로 고락을 함께 했다. 김응용이 ‘빛’이라면 유남호는 ‘그림자’였다.
그런 두 사람은 지난해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졌다. 유남호 당시 수석코치가 더그아웃 뒤에서 담배를 피우다 김응용 감독에게 발각된 것. 김 감독은 “어디라고 담배질이야, 담배 안 꺼?”라고 소리를 질렀다. 유 코치가 평소 하던 대로 “알겠다”라고만 했어도 더 이상 문제는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 코치는 곁에서 듣고 있던 아들 같은 선수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는지 “감독님, 제 나이도 이제 오십이에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애들 보는 눈도 있잖아요”라며 대꾸를 한 것이 20년 관계를 틀어버렸다.
김 감독은 그렇잖아도 유 코치가 몇 개월 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쉬는 날 보고 없이 선수들과 물놀이를 갔다가 한 선수가 죽을 뻔한 사실을 맘속에 품고 있던 터라 그를 아예 2군으로 보내버렸다. 다음날로 유 코치는 구단에 몸이 아파 쉬겠다며 사표를 던졌다. 김응용 감독으로서는 믿었던 유남호의 배신이 더더욱 뼈아팠을 것이다.
국경선 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