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리 생각이 많은지 침대에서 뒤척거리다보면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 무렵 한두 시간 자고 훈련장에 나가면 몸은 무겁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또 밤이면 술 한잔 하자는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데 한잔하고 들어와 잠이나 자야겠다며 밤거리에 나섰다. 하지만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었다. 특히 술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고종수가 술로 또 사고를 쳤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을 덮었다.
괴로워서 술을 마셨고 잠을 자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축구인생에서 낙오하고 말 거란 위기감이 들었지만 나를 제어하지 못했다. 재기를 원했던 차범근 수원 감독과도 마찰이 있었다. 수원에서 임의탈퇴한 뒤로는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는 듯했다. 안된다. 다시 뛰어야 한다. 휴대폰 번호도 바꿨고 청담동 집과 청계산, 휘트니스 센터, 보인정보고만을 오가고 있다.
사람들은 요즘 “살이 너무 많이 쪘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 몸무게가 4kg 이상 늘어나는 게 당연했다. 누구는 흙바닥에서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이 애처롭고 우습기도 하단다. 그러나 금호고 시절로 돌아간 듯해서 너무 좋다. 흙바닥이지만 아무 잡념도 없이 운동에만 매진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친분이 있던 임근재 보인정보고 감독이 운동을 권유했을 때 사실 좀 고민했다. 잔디에서만 몇 년을 훈련하고 경기했는데 다시 흙바닥이라니. 그러나 다 잊어야 한다. 아버지의 눈물어린 호소를 생각하면 이를 악물었다.
청담동집에 함께 사는 부모님의 건강이 너무 좋지 않다. 아버지는 교통사고 후유증도 있지만 폐가 좋지 않으셔서 몸무게가 줄었다. 어린 시절부터 2남 1녀의 장남인 나에게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는 하루는 “종수야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이전의 영광을 되찾는 것보다 네가 너를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잘 울지 않는 성격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어머니와 시집간 누나, 군 제대 후 취직준비를 하고 있는 남동생. 한 집안의 가장으로 의엿하게 역할을 다하고 싶었는데 사고만 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으로 펑펑 울었다. 이전보다 부모님과 얘기를 많이 하면서 따뜻한 가족애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정말 안정을 위해서 결혼하고 싶다. 지금은 여자가 없지만 곧 좋은 배우자를 만날 것으로 기대한다. 나에 대해 사람들의 선입관이 있는데 순진하고, 세상을 모르고, 제 멋대로였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을 위해 기독교를 믿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왜 많은 선배들이 일찍 결혼해서 안정을 찾으라고 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제일 친한 후배인 (이)동국이가 대표팀에 재발탁돼 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도 큰 자극이 된다. 둘 다 한국축구의 대들보라는 기대를 저버린 철부지들이다. 그러나 인생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동국이와 나란히 뛰고싶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