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응용 사장.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국 스포츠계에선 ‘선수출신 CEO’가 최초의 일이다. 그러나 프로스포츠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선수들이 구단의 고위책임자로 임명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중에는 현역시절의 감각을 잘 살려 성공한 CEO들도 있고 반대로 “구단을 말아먹었다”는 험담을 듣는 CEO도 있다. 외국의 사례를 통해 김응용 신임 사장의 앞날을 조명해 보자.
미국 프로야구에서 전문경영인으로 가장 훌륭하게 변신한 인물은 투수 출신으로 현재 LA 다저스 부사장을 맡고 있는 토미 라소다일 것이다. 그의 등번호였던 2번은 LA 다저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돼 있다. 야구를 잘해서 영구결번이 잘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현역시절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겨우 2승 3패. 그나마 ‘통산’ 13이닝 동안 11자책점을 기록한 형편없는 선수였다.
그러나 라소다는 LA 다저스 감독을 20년이나 맡으며 팀을 메이저리그 정상급팀으로 탈바꿈시켰다. 라소다 감독은 특히 비(非) 미국권 선수들을 발굴해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외국에서 데려온 선수들을 마치 친자식처럼 돌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모 히데오, 박찬호 등이 아직도 그를 ‘정신적인 아버지’라고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올 시즌 LA로 트레이드된 최희섭을 여론의 질타로부터 보호해준 인물도 라소다 부사장이다. 특히 다저스의 연고지역인 LA가 워낙 여러 인종,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사는 지역이라 팬층이 다양하고, 그런 구단을 이끄는 경영인으로서 라소다 부사장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뉴욕 메츠의 오마르 미나야 단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최빈곤 구단’인 몬트리올 엑스포스 단장을 맡았지만 올해부터는 ‘부자 구단’ 메츠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게 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선수들을 팔러 나온 미나야 단장이 올해는 거꾸로 선수들을 쓸어 담으려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미나야 단장은 메이저리그 사상 첫 히스패닉계 단장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지만 주로 뉴욕에서 자란 미나야 단장은 오클랜드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외야수 겸 포수로 활동했는데 선수로는 대성하지 못한 채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 (왼쪽부터)LA 다저스-토미 라소다 부사장, 뉴욕메츠-오마르 미나야 단장,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빌리 빈 단장, 레알 마드리드-호르헤 발다노 전 단장. | ||
미나야 단장과 쌍벽을 이루는 단장이 오클랜드의 빌리 빈. 빌리는 마이너리그를 전전한 미나야 단장과는 달리 뉴욕 메츠와 미네소타 트윈스 등에서 6년간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한 야구 엘리트다. 그러나 오늘날 빌리를 ‘야구인’으로 부르는 사람보다 ‘경영의 귀재’로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난 99년 오클랜드 단장에 오른 뒤 당시로서는 드물게 컴퓨터 등을 이용한 선수 데이터 분석을 시도한 선구자다. 그 결과 연봉 총액이 4천만달러 안팎에 머물던 오클랜드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며 “최소 비용 최고 효용”의 극치를 보여줬다. 물론 그 배경엔 빌리 단장의 합리적인 구단 운영이 있었다. 빌리 단장이 선호하는 선수들은 “moneyball player”. 몸값은 적고 화려하진 않지만 팀 공헌도가 높은 선수들을 일컫는다. 오클랜드가 올시즌 한때 최희섭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이는 최희섭이 빌리 단장의 기준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
미국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프로구단들은 선수 출신들을 경영진에 속속 합류시키는 추세다. ‘지구 방위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가 대표적인 예. 지난 시즌까지 호르헤 발다노가 단장직을 맡았었고, 그 뒤를 이어 올 시즌에는 에밀리오 부트라게뇨가 단장직에 올랐다. 발다노는 현역시절인 84~86년 프리메라리그에서 33골을 터뜨린 대표적 골잡이. 아르헨티나 선수로서 86년 월드컵 당시 한국전에서 2골을 터뜨려 국내에도 아직 그를 기억하는 축구팬이 많다.
감독에 취임한 뒤에는 라울 곤잘레스를 발굴해내 세계적 스타로 키워냈다. 그러나 지나치게 스타급 선수 영입에 의존하다 결국 단장직에서 쫓겨났다. 그의 뒤를 이은 부트라게뇨 역시 스페인이 낳은 최고의 공격수로 거론될 정도. 올 시즌 영입한 마이클 오언의 맹활약 덕분에 구단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