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VP를 거머쥔 배영수와 신인왕 오재영의 수상 모습. 오른쪽은 브룸바. | ||
토종과 용병 사이에는 차별이 있다?
투표에 참가하는 기자들은 이런 분위기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시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국내 선수와 외국 선수의 경쟁이 벌어질 경우, 외국 선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A스포츠신문의 B기자는 “예전에 우즈가 MVP로 선정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때에는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경우였다”면서 “브룸바의 성적이 뛰어나긴 하지만 홈런왕이 아니라 타격왕이기 때문에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평가절하될 수도 있다”며 ‘차별’이라기보다는 ‘차이’로 이해해 주길 당부했다.
기자들이 내세우는 브룸바의 약점(?) 중 하나는 홈런왕 타이틀을 잡지 못했다는 것. 올 시즌 브룸바는 홈런 33개로 박경완(SK)에게 1개 뒤져 2위에 그친 반면 배영수는 17승으로 다승왕에 올랐다는 게 기자들의 표심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배영수가 탄 다승왕이 리오스(기아), 레스(두산)와 함께 받은 ‘공동수상’이며 20승 이하의 기록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6:4 정도로 배영수의 근소한 우세를 예상했지만 결과가 일방적인 배영수의 승리로 끝나자 기자들도 다소 당황했다는 후문. C신문의 D기자는 “만약 브룸바의 기록이 국내 선수가 세운 것이었다면 그 평가와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국내선수 프리미엄을 인정했다.
MVP와 신인왕은 팀별로 나눠먹는다?
생애 한 번뿐인 신인왕은 오재영(현대)에게 돌아갔다. 피 말리는 접전이 벌어진 신인왕 투표에서 오재영은 53표를 얻어 43표의 권오준(삼성)을 10표차로 따돌리고 타이틀을 따냈다. 이런 결과가 나오다 보니 일부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즉, MVP가 삼성에서 나오다 보니 신인왕은 어쩔 수 없이 현대에게 넘긴 게 아니냐는 것.
기자단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MVP와 신인왕을 가급적 한 팀에 몰아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이번에는 동시 투표하고 발표를 차례로 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분배 같은 건 결코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E스포츠신문의 F기자는 “투표 전에 신인왕의 경우 너무 팽팽할 것 같아서 MVP에 따라 안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오간 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두 투표가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 쪽을 밀어준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일부에서 제기되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기자들끼리 미리 의견 조율한다?
언론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분위기였다. 1~2표의 투표권을 얻는 일간지의 경우 보통 기자의 판단에 따라 투표하게 되지만 5표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는 스포츠신문에서는 미리 기자들끼리 의견조율을 하기도 한다는 것. G신문의 H기자는 “신문사에 따라 미리 특정 선수를 밀어주는 걸로 의견일치를 보기도 한다”면서 “내부에서 미리 투표해 그 비율에 따라 최종투표에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전 의견조율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단 전체에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국시리즈가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
기자들은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노런 기록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대부분 인정했다. I기자는 “기자도 사람이다 보니 정규리그 성적만 봐야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오면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며 한국시리즈 때문에 우승 프리미엄을 봐야할 브룸바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MVP 투표는 정규리그가 끝난 직후 투표했다가 한국시리즈 이후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