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전날 만난 기아 김진우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2월3일, 광주 시내의 유명 보쌈집에서 만난 예비 신랑 김진우(21·기아)는 입이 귀에 걸렸다는 표현이 제격일 만큼 웃음꽃이 피어났다. 얼굴이 푸석푸석해 보여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마음이 달떠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이란다. 그래서 딱 24시간만 참으라고 했다. 김진우의 결혼식 전날 이뤄진 진짜로 생생한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영미(이):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축하해요. 근데 너무 일찍 결혼하는 거 아닌가요?
김진우(김): 그런 소리 진짜 많이 들었어요. 결혼 안한 선배님들께 무지 죄송해요. 나이는 어리지만 철부지는 아니에요. 한 가정을 꾸릴 만한 자신도 있구요.
이: 자신 없다고 물릴 수는 없잖아요^^. 결혼을 일찍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김: 4년 전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신 다음부터 결혼을 일찍 할 생각이었어요. 엄마의 빈자리를 빨리 채우고 싶어서. 지난 1월에 약혼식을 올렸는데 향희(예비신부 이향희씨·22)가 빨리 결혼하길 바라더라구요.
이: 처갓집에서 반대는 안했어요?
김: 웬걸요. 특히 장인어른 반대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향희에겐 정혼한 남자가 있었는데 장인어른 친구분 아들이었죠. 아버님 입장에선 제가 불청객이나 다름없었어요. 처음엔 눈엣가시였을 거예요. 그래도 향희가 저에 대해 일편단심하니까 마음을 푸시더라구요.
▲ 신부 이향희씨와 찍은 웨딩 사진. | ||
이: 만나자마자 ‘사귀자’가 아니라 ‘결혼하자’라고 했다는데, 정말 맞아요?
김: 만나서 한 달 동안 일방적으로 쫓아다녔어요. 그러다 내 마음을 고백했고 그 자리에서 ‘결혼하자’고 했죠. 상대방 입장에선 황당했을 거예요. 일주일 동안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뒤 일주일 후 결혼은 그렇고, 만나는 보자라고 얘기하대요. 그러면서 시작됐어요.
이: 향희씨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어요?
김: 이런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한참 있다가) 엄마를 정말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잡았어요.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이: 몇 차례 헤어질 위기도 있었겠네요.
김: 있었죠. 전에 사귀던 여자한테 계속 연락이 온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연락 안한 적도 있었고 술 마시고 절제할 줄 모른다고 야단맞은 뒤 안 만난 적도 있었어요. 또 돈 헤프게 쓴다고 혼나기도 하고, 담배 피우면 절교한다고 난리치고. 그런데 그렇게 살아야 오랫동안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억울해도 꾹 참아요.
이: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프로로 직행해서 처음엔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김: 정말 갈등의 나날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겠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 최고였어요.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다가 프로에 가니까 아무 것도 아니더라구요. 선배님께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절 받아주시는 분이 없었어요. 그러다 최상덕 선배를 알게 됐죠. 그 선배님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이: 올해 초 무릎 부상으로 독일에서 수술 받고 재활 훈련하며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면서요.
김: 제가 눈물이 좀 많아요. 그 당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재활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한국이 그립고 야구가 그립고 친구들이 보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한국에 들어오니까 저에 대한 비난이 엄청났어요.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원인 중 하나로 절 꼽았으니까요. 또 다른 시련이었죠.
이: 야구장 밖에서 불미스런 일들도 있었잖아요. 밖에 나가면 시비 거는 사람들이 많은 편인가요?
김: 정말 많아요. 체격이 커서 그런지, 얼굴이 알려져서 그런지. 하루는 광주 게임 선발로 나갔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뒤 혼자서 단골 포장마차에 들렀어요. 그때 앞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 4명이 야구 얘기를 꺼내며 제 욕을 엄청 해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제가 뒤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그들과 눈이 마주쳤어요. 그런데 절 앞에 세워놓고 얼마나 야단을 쳤는지 몰라요. 기분 같아선 한판 붙고 싶었죠. 그래도 꾹꾹 참았어요. 잘못했다, 내년부터 잘하겠다면서. 나중에 혼자 또 울었죠.
김: 그 선배님이 오신다고 해서 제가 밀린다는 보장은 없는 거 아닌가요. 한번 경쟁해 보고 싶어요. 1선발 자리를 놓고. 그렇게 자극받는다면 저한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아, 참. 해태(현 기아) 입단 전에 LA다저스와 계약을 맺을 뻔했다면서요?
김: 이건 비밀이었는데…. LA 다저스와의 계약을 하루 앞두고 포기했어요. 전날 밤 어머니가 술 한잔 드시고 미국 가지 말라고 붙잡으시는 바람에 틀어 버렸죠. 아쉽긴 해도 후회는 안 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 결혼 앞둔 예비 신랑에게 너무 심각한 질문만 했나봐요. 좀 쑥스런 질문인데 첫날밤은 어떻게 보내실 계획이세요?
김: 후배들은 벌써 ‘첫날밤’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자주 물어보는데요. 맹세컨대 아직 그런 ‘역사’는 벌어지지 않았어요. 처음 뽀뽀한 것도 만난 지 두 달 만이었고, 키스는 5개월 만에 이뤄졌어요. 결혼 전까지 지켜주고 싶어서 별 일 없이 지냈어요. 제가 잠을 못 이루는 이유를 아시겠죠? 첫날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레 잠이 안 와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