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박한이, 박진만과 홍성흔·김정임 부부(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 ||
시상식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선수는 투수부문 후보로 오른 조용준(현대)이었다. 회색빛 머리와 고급스러운 안경으로 한껏 멋을 낸 조용준은 한 동안 로비에서 팬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연출했다. 좋은 꿈이라도 꿨냐는 질문에 조용준은 “상을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만 경쟁 선수들이 너무 치열해서 담담하게 지켜보려고 한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시상식을 30여 분 앞두고는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사진기자들의 플래시를 가장 많이 받은 ‘인기짱’ 선수는 홍성흔(두산)이었다. 바람머리와 강렬한 붉은색 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홍성흔이 단연 튀기도 했지만 아내 김정임씨와 결혼 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함께한 모습이 단연 ‘그림’이 되었기 때문. 홍성흔은 “아내가 직접 코디해 준 옷으로 입고 나와서 무대에 꼭 올라가야만 될 것 같은데 혹시 결과를 알고 있으면 미리 말해줄 수 없느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선수들의 성격에 따라 패션의 방향도 정해진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홍성흔 외에 붉은 넥타이에 포인트를 준 선수는 박진만과 박한이(이상 삼성) 등이었다. 박진만은 “사실 어떤 색깔의 넥타이가 좋을지 며칠 동안 고민하기도 했다”며 웃음을 터뜨렸고 박한이는 “이런 날에는 얌전한 것보다는 조금 밝은 색이 좋은 게 아니겠냐”며 나름대로의 패션 감각을 자랑하기도 했다.
반면, 평소 말수 적기로 유명한 양준혁 박종호 김한수(이상 삼성)와 이진영(SK) 등은 푸른색이나 짙은 밤색의 점잖은 컬러로 자신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특히 양준혁은 와이셔츠와 넥타이 등을 모두 갈색톤으로 통일해 묵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명타자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김기태(SK)는 중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더블재킷을 선보였고, 외야수 후보에 오른 이종범(기아)은 넥타이 대신 어깨위로 걸친 목도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선배를 축하하러 온 이대호(롯데)는 검정색 가죽 반코트로 후보자들 못지않은 옷맵시를 뽐내기도.
선수 못지않게 감독들 또한 헤어와 패션에 상당히 신경을 써 참석한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 모두 수상자 발표자로 나설 예정이었기 때문.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인사를 건네는 선수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함박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여유를 보인 감독들이었지만 막상 미모의 탤런트와 함께 무대에 올라설 때는 긴장한 모습을 역력히 보여 대조를 이뤘다. 양상문 감독(롯데)은 “그래도 내가 다른 감독들보다는 무난하게 진행하지 않았느냐”면서 나름대로 흡족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한편 화려한 시상식이 끝나자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인 선수들도 있었다. 투수와 포수 부문에서 후보에 그치고 만 조용준(현대)과 박경완(SK)이었다. 특히 박경완은 올 시즌 홈런왕(34개)을 차지하고도 골든 글러브를 차지하지 못하는 비운을 맛봤다. 박경완은 1부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2부 만찬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서둘러 주차권을 챙겨 시상식장을 빠져 나가 복잡한 그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