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메츠에 입성한 구대성이 지난 11일 ‘미니캠프’에서 몸을 풀고 있다. | ||
뉴욕 메츠는 스프링캠프 한달 전 40인 로스터 선수 중 일부를 모아놓고 코칭스태프와 상견례를 갖는다. 부상 전력이 있던 선수들은 이 기간 동안 점검을 받기도 하고, 새로 메츠에 둥지를 튼 선수들은 분위기도 익히는 자리다.
3일간 이 캠프에 참가한 구대성은 처음에 수업에 관심 없는 학생처럼 보였다. 윌리 랜돌프 메츠 신임 감독이 말을 하는 동안 뒤에서 심드렁하게 듣는가 하면, 필드로 이동할 때도 내키지 않은 듯 터벅터벅 걸어 다녔다. 그러나 훈련이 시작되자 구대성의 눈에서 불이 났다. 마치 재미있는 게임을 온전히 즐기는 듯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3일간 구대성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노장의 달뜬 파이팅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틈틈이 진행한 ‘리얼토크’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입단식직후실감이 나느냐고 묻자 구대성은 덤덤했다. “오릭스에 갈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기분이에요.”
양키스행은 결국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구대성은 ‘꿈을 꿈으로 일단 접어두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양키스 입단을 위해 지난 연말 한국에서 보냈던 그는 미국의 ‘러브콜’을 기다리며 초조해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란다. “기다리는 동안 공도 던지고 그랬어요. 아는 분 옥상을 통째로 빌려서 그물망도 세우고 3일에 1백 개씩 뿌렸죠”. 살고 있는 아파트 16층까지는 걸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걸로 러닝을 대치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행여 미국행이 틀어진다고 해도 제가 완전히 야구를 그만두거나 못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죠. 줄곧 그런 생각을 한 덕분에 불안하진 않았어요”라고 밝힌다.
메츠 입단 당시
다르게 질문해 봤다. “만약 40만달러를 받더라도 메츠와 계약 했을까요?” “그럼요. 10만 달러였더라도 나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여기 왔을 겁니다. 난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었지 돈을 벌려는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야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운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느냐”고 묻자 한참 생각에 잠긴 구대성은 “운동하는 동안엔 별로 힘든 적이 없었는데요?”라고 재미없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런 것 말고 정신적으로 좌절했던 경험에 대해 되물었다. “플레이를 계속 못할 때, 즉 슬럼프에 빠질 때는 아무래도 괴로웠겠죠.” 힘든 적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정신적 압박감에서 자유로운 선수들은 선이 굵은 플레이를 한다. 아무래도 구대성은 그런 스타일이 아닐까.
구대성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후배들이 좀 더 정신적으로 무장돼 있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할 때 훈련을 결코 착실하게, 그리고 강도 높게 하지 않았어요. 왜? 그래도 통했으니까요. 그런데 일본 선수들은 다르더라구요. 우리 후배들이 만약 해외에 진출하고 싶다면 기존의 습관을 완전히 바꿔야 될 거예요. 기술적인 면은 차치하고라도 정신력에서조차 일본 선수들에게 뒤진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일본 애들이 어떤 줄 아세요? 시즌이 끝나자마자 훈련 계획을 세워놓고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그대로 실행에 옮겨요. 한치의 빈틈없이 행동하죠. 쉽게 타협해서 훈련을 거르거나 건너뛰는 선수들이 없어요. 내가 본 선수들은 모두 그런 생활을 했으니까요.”
구대성은 ‘운칠기삼’이란 표현을 싫어했다. 아니, 틀린 말이라고 정정했다. ‘운칠기삼’이 아닌 ‘기칠운삼’이 프로야구 선수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하면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후배 임창용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조언을 던졌다. “자기가 정말 야구로 밥을 먹고,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야구만 생각해야 돼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오직 야구만 생각한다면 창용이는 야구를 너무 잘할 선수입니다.” 의미심장한 멘트였다.
다른 선수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국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타자에 대해 궁금증을 나타냈다. 약 1분간 생각하더니 “없었다”고 웃으면서 답한다. 대신 좋은 타자,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아까운 투수와 타자 한 명씩을 꼽았다.
▲ 지난 11일 입단식 직후 기자와 메츠 팬들을 만나고 있는 구대성. | ||
마지막날구대성이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 그리고 지금 성공을 이뤘냐고 질문했다.
“아직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죠. 어느 정도는 했지만 이건 성공이 아닌 거 같아요. 일본의 오릭스에선 제대로 했어요. 목표도 이뤘고. 그러나 일본 프로야구 전체에 날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어요. 성공이라…. ‘넘버원’이 되는 게 바로 성공 아닐까요?”
구대성은 인생의 라이벌을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다. 운동할 때나 사생활에서나 뭐든지 ‘나는 이걸 해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나는 당연히 이걸 넘어설 수 있다’라고 최면을 건다고 한다. 어느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 과묵한 타입으로 알려져 있던 구대성은 3일간의 미니 캠프 동안 꽤 밝고 쾌활했다. 장난도 잘 치고 유머러스한 스타일인데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무지 엄숙하고 의젓한 ‘척’ 했던 거다.
뉴욕으로 이동하기 전 구대성과 ‘찐하게’ 악수를 나눴다. 구대성의 손은 두껍고 따뜻했다. 자신의 꿈을 일궈낸 손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미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