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타국에서 신통한 적응력으로 NBA 루키로 떠오른 하승진. 이젠 제법 말도 통하고 친구도 생겨 자신감이 넘친다고. | ||
바로 하승진(19·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이 꼭 그렇다. 지난달 20일 LA 레이커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서 덩크슛 3개를 포함해 13점을 내리꽂은 뒤 하승진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져 있었다. 거리에서 그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고, 만나는 사람마다 종이를 꺼내들곤 사인을 요청해온다. 불과 4개월 전, NBA에 첫 발을 내딛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이젠 어엿한 포틀랜드의 유명스타로 떠오른 하승진에 대해 지역 언론도 ‘포틀랜드 미래의 센터’라고 연일 호들갑이다. 루키로서, 대한민국 1호 NBA 선수로서 성공적인 첫시즌을 마친 하승진을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포틀랜드 현지에서 만나봤다.
하승진에 대한 포틀랜드 팬들의 사랑이 지극 정성이다. 하승진이 골을 넣을 땐 관중들은 경기중 가장 큰 함성을 보냈고, 언론들도 하승진을 잘 뽑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팀에서도 하승진 밀어주기에 적극 나설 정도다. 구단에선 포틀랜드 다운타운에 대형 블레이저스 간판을 내걸었는데 이 간판의 모델로 하승진을 기용한 것. 팀의 간판인 스타더마이어나 심지어 1순위 루키인 세바스찬 텔페어마저 제치고 ‘3순위 루키’인 하승진이 팀의 간판 모델로 나섰다. 포틀랜드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과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 부분이다.
올해 NBA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뭐냐고 물어봤다. 하승진은 자신의 첫 NBA 데뷔전이었던 1월7일 마이애미 히트전을 꼽았다. 경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감독이 벤치에 앉아있는 자신을 쳐다보더니 ‘하(Ha)’ 하고 부르며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순간 하승진은 온 몸이 짜릿할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고. 물론 1분11초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득점이나 리바운드 등을 기록하진 못했다. 하지만 하승진에게 이 경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NBA 코트를 처음 밟았기 때문이다.
NBA 첫 시즌에 하승진은 꽤 많은 스타들과 맞대결을 벌였다. TV로만 보던 스타들과 직접 코트에서 뛴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다. 하지만 하승진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NBA 선수가 다른 NBA 선수와 뛰는 건데…. 별 다른 느낌 없었어요.”
‘마이클 조던의 후계자’로 불리는 르브론 제임스와도 맞대결을 펼쳐봤고, 코비 브라이언트와도 같이 뛰어봤지만 특별한 느낌이 전혀 없었단다. 하지만 야오밍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야오밍과 직접 코트에서 맞서보니 왜 야오밍이 대단한 선수인지 알겠더라구요. 충분히 저의 롤(Role) 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아시아 출신이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직접 코트에서 부딪혀보니 야오밍은 어느덧 아시아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우뚝 서 있었다는 것이다.
첫 시즌을 보내며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하승진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꼽았다. 영어가 아직 서툴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용어도 많아 처음엔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고.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하니까 죽겠더라구요. 그러다 한 1개월 정도 지나면서 사람을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런 문제는 점차 줄어들었죠.” 이젠 제법 친구도 많이 사귀었단다. 하승진은 가장 친한 친구로 2년차인 아웃로(Outlaw)를 꼽았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같은 루키 텔페어와도 꽤 친하게 지낸다고. 하승진은 이제 팀 분위기도, NBA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다 익혔단다. 이젠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일만 남았다. “올해는 배운다는 자세로 임했지만 내년부터는 뭔가 꼭 보여줄 겁니다.”
그래서 몇 차례 플레이를 망친 적이 있었다. 마음을 바꿔먹었단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짧은 시간이나마 기회 있을 때 뭔가 보여주자”고. 출전 횟수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시즌 막판엔 자신의 색깔을 담은 플레이를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어느덧 포틀랜드에서 생활한 지도 9개월여. 물론 훈련에다 게임 쫓아다니느라 아직 맘 놓고 여행 한 번 다녀본 적이 없단다. 친구도 없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저 친구 많아요” 하며 반색을 한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데 거기서 제 또래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죠. 시간 날 때 그 친구들과 포켓볼도 치고 같이 다니면서 놀아요.” 낯선 타국땅에서 문화 충격(Culture shock), 외로움과 싸우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친구도 많이 사귀는 등 전혀 심심하게 보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승진은 2일 귀국한다. 한국에 약 한 달간 머물 예정인데 그냥 친구도 만나고 맛난 음식도 먹으면서 푹 쉴 예정이라고. 그리곤 7월에 섬머리그에 참가한단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약 2주정도 벌어지는데 그 리그에 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 예정이다. 가을엔 태극마크를 달고 동아시아대회에 뛸 계획도 갖고 있다. 그땐 야오밍과 다시 한판 붙는다.
겉으로는 푹 쉬겠다고 했지만 이번 오프시즌 동안 체력훈련을 집중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단 코트를 왔다 갔다할 수 있는 체력이 돼야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데, 아직까지 NBA에서 풀코트를 뛰기에는 체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했다.
잔꾀 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NBA 정상급 선수가 될 날도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포틀랜드=최성욱 스포츠투데이 기자